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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의 명칭
운영자 2006-11-09 추천 0 댓글 0 조회 557

◈ 성막의 명칭

장막 = 출25:9 <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

                       양과 그 가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

                       라 >

 

겉 모양이 휘장으로 덮여져 있어서 주어진 이름입니다. 다시 말해서 장으로 짜여진 장막을 쳤기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성막 = 출26:30 < 너는 산에서 보인대로 성막을 세울지

                         니라 >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해 계실 곳이기에 이런 이름이 주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백성들을 만나 주시고 말씀 주시고 죄 사함과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회막 = 출29:42 < 이는 너희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 문

                        에서 드릴 번제와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만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구심점을 삼겠다는 것입니다.

 

증거막 = 민1:53 < 레위인은 증거막 사면에 진을 쳐서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 진노가 임하지 않

             게 할 것이라 레위인은 증거막에 대한 책임을

             지킬지니라 >

율법과 계약의 말씀이, 증거의 말씀이 있는 곳이라 하여 주어진 이름입니다.

 

성소 = 출25:8 <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

          를 위하여 짓되 >

 

거룩한 장소라 하여 구별된 장소라 하여 주어진 이름인데 이는 특히 이방인들을 구별할 때 쓰여지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특히 성막의 구심점이 성소 안에 있기에 이를 지칭하여 전체를 말하기도 합니다.

 

법막 = 대하24:6 <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 이

          르되 네가 어찌하여 레위 사람을 시켜서 여호와

          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의 회중이 법막을 위하여

          정한 세를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거두게 하지 아

          니하였느냐 하니 >

 

이는 법궤가 여기 있다 하여 법막이라 주어진 이름입니다.

 

하나님의 집 = 삿18:31 <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

                    손에게 있었더라 >

 

여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여 계시고 백성들과 만나시고 대화하시고 교통하는 집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여호와의 집 = 삼상1:7 < 매 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

                    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며 브

                    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

                    지 아니하니 >

 

오직 하나이시고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요 창조와 통치보존과 궁극적 심판하시는 만군의 하나님을 지칭하는 집이라는 이름이 주어진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성소 = 히9:1 < 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

                           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더라 >

 

본래의 성소는 하나님의 나라에 있고 이것이 실체요 지상에 있는 것은 하나의 모형입니다. 이는 그림자인 성소가 세상에 있기에 주어진 이름인데 바로 여기에 천국 백성이 양육되고 훈련되어질 유일한 곳입니다.

 

 

  ◈ 성막을 짓는 법

출25:1~9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

                 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

                 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

                 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 지니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은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수양의 가

                 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

                 에 드는 향품과 분향할 향들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가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

 

성막하나님이 임재하실 이라 했습니다. 이 곳에 임재하여 드리는 제사와 예배를 열납하시고 기도의 교제와 응답이 있고 복을 주시고 구원의 은혜 베푸시고 죄 속함의 은혜를 주시고 백성을 만나 주실 곳입니다. 이는 실체가 하나님의 보좌에 있고 성막은 모형이요 그림자로서 지금 우리가 "에클레시아" 거룩한 구원의 무리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이는 또한 우리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모일 공동체의 예배의 처소인 성전을 의미하는데 이는 보이는 성막이요 또한 보이지 아니하는 성막 우리의 심령 속에 지어야 할 성막으로서 앞으로 성막 공부를 하면서 보이는 교회인 유형 교회 뿐만 아니라 사실은 무형 교회인 내 마음의 심령에 지어야 할 성막이기에 이 성막을 짓는 법과 어떤 재료를 가지고 내게 어떻게 성막을 지을 것이며 이 재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또 어떻게 지어가는 것이 내 마음의 성전을 완성하여 하나님을 모시고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모시는가의 비밀이 성막에 있으므로 심령에 성막을 지어 완성하지 아니하면 결단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는 비밀이 이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이것을 지금의 주의 종들과 교회가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성막의 존귀성과 중차대함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공동체인 '에클레시아' 교회가 지어야 할 성막과 내 심령 속에 지어야 할 성막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꼭 지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목적과 목표를 두고 전심을 다하여 내 심령 속에 반드시 건축해야할 성막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을 완성하는 것이 곧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는 유일한 길이기에 이 성막 공부를 통해서 여러 성도님들의 심령의 성막을 꼭 완성되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막의 뜰

성막의 뜰에서는 또 다시 성막의 울타리, 성막 문, 번제단, 물두멍의 4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 성막 울타리 = 성도를 구분시키는 기준.

 

☆ 성막 문 = 성도가 되는 구원의 유일한 길, 예수 그리

                  스도께로 는 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문 하나입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

                  도 외에 다른 어떤 구원의 길이 없다는 뜻

                  입니다.

 

☆ 번제단 =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양이 죽는 곳입니

                 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

                 음을 의미합니다.

 

☆ 물두멍 =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옛 사람의 근성과

                 속성과 본성을 씻어 깨끗케 하는 성화의 길

                 로서 번제단이 원죄의 씻음이요 물두멍은

                 자범죄의 씻음으로 여기서 항상 말씀으로

                 죄를 씻지 아니하면 절대로 성화가 되지 아

                 니합니다.

 

출27:9 <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을 향하여 뜰

             남편에 광이 백 규빗의 세마포 장을 쳐서 그

             한편을 당하게 할지니 >

 

성막의 뜰의 크기는 남편과 북편이 각각 45.6m 동편과 서편이 각각 22.8m이며 동편에는 9m 크기의 문이 나 있습니다.

 

= "차르" - 이는 '괴롭히다'는 뜻의 동사 '차라르'에

       서 유래된 말로 좁은 장소라는 뜻입니다.

 

성막의 뜰은 희생제물로 바칠 짐승을 대기 시키고 잡는 곳으로서 하나님 앞에 죄의 처리로 인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 자리이며 뜰은 울타리를 치므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울타리 안이어야지 울타리 밖에는 절대로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성 밖이라 하여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으며 구원 밖이요 예수 그리스도 밖이라는 말이요 교회 밖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좀 더 크게 울타리를 치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좁게 작게 울타리를 치셨을까!

 

첫째 : 괴로운 장소라는 의미.

성막의 뜰 안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을, 교회 안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일단 교회에 나오면 우리에게 첫번째 다가오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던 육의 옛 사람, 죄인의 삶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적인 삶과 죄인의 삶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괴로움이 말할 수 없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국 백성의 훈련과 교육과 연단과 시련의 과정을 밟아야 하고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천국인으로 예수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이 바로 천국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형상과 신의 품성에 이르기 위한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십자가가 있는 곳이 교회요 나의 심령 속에 이 성막의 뜰의 기틀을 마련하고 성막을 지어가야 하는데 있어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교회가 축복으로, 기복주의, 병 고치고 문제 해결 받고 예언하고 귀신 쫓아내는 신비주의와 예수를 믿되 철학적인 예수로, 윤리 도덕적 예수로 믿고 자기가 원하는 이 땅의 성공과 출세와 행복과 영화를 누리려는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이 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기초적이고도 초보에 이르는 신앙의 과정에 있을 수 있는 기초적 단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런 문제 해결과 축복을 믿습니다!'해서 이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목적은 구원입니다.

이것이 고난의 십자가와 환난과 고통의 괴로움 없이 결단코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잘못 믿고 있는 주의 종들이나 성도가 너무나 많습니다. 축복이나 신비는 믿음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에 이르러 구원의 과정에 하나의 초보적 단계이고 필연적으로 누구나 다 거쳐야 하는 단계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오래 머물다가 멸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구원의 과정이지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교회가 이런 고난과 십자가의 괴로움으로만 완성될 거듭남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괴로움과 환난이 있으므로 이 고난과 괴로움을 당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하여 자기 삶을 이 땅의 축복과 행복을 누리겠다고 추구하고 이것을 누리는 자가 축복받고 구원 얻은 것처럼 말씀을 선포하고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모르는 교회가 대단히 많습니다.

교회는 천국인을 양육하기 위해 거룩히 구별된 하나님의 집이요, 성전이요, 구원의 유일한 훈련처입니다.

교회에서 자기의 누릴 행복과 영화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무서운 착각과 오류 속에 빠져 있는 이 시대의 교회에 대하여 참으로 안타까운 심령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 좁은 장소라는 의미.

마7:14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

             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많은 교회 성도들이 아직도 이 땅의 초월된 삶이 있어야 이것이 거듭남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목사님들의 각양각색의 해석으로 수많은 구원론이 나와 있고 거듭남이 무엇이고 거듭나기 전의 성도의 삶과 거듭난 후의 성도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영의 분별력이 없으므로 절대로 거듭나지 아니한 성도를 거듭났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성도는 예수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에 이르기 위한 고난의 십자가를 절대로 지지 아니하고 이 땅에서 누릴 영화와 행복을 위하여 전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이때 성도의 영혼은 영영 구원이 사라지게 되고 심판과 멸망의 족속이 되고 맙니다. 이런 착각 속에 사는 주의 종이나 성도들이 많다는 것이 한국 교회에 치명적입니다.

이는 아직도 거듭남의 비밀과 성막의 구원의 비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교회 안에 있는데 좁은 길로 가는 성도가 있고 넓은 길로 가는 성도가 있습니까? 넓다는 것은 많은 성도가 가고 있다는 증거이며 좁은 길은 수가 적기 때문에 그리고 고통과 고난의 십자가로 협착하기 때문에 이 길을 찾는 이가 적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지를 성막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영적으로 분석을 해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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