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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단 (1)
운영자 2007-10-17 추천 0 댓글 0 조회 1225

     제   3    과

    번   제   단

출27:1~8 <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

                 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쌀지며 재물 담는 통과 부삽

                 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단

                 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고 그물을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곧 단 절반에 오르게 할지며 

                 그 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

                 로 쌀지며 단 양편 고리에 그 궤를 꿰어 단을 메게 할

                단을 널판으로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

                 들이 만들지니라 > - (출38:1~8)

 

1. 번제단의 뜻.

= "미쯔바하" - 동사 '짜바'에서 온 말로 이것은 '동물을 학살하

        다, 죽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번제 = "오라" - 동사 '아라'에서 파생된 말로 '나아가다, 올라가

           다'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단은 단과 번제의 합성어로

 

번제단 = '동물을 잡아 죽여 나아가다, 또는 올라 가다'는 의미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어린양이 죽어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과 몸을 깨끗이 씻어 토막을 내고 이것을 불로 태우는 제단이었는데 번제단의 형태나 어린양의 죽는 모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희생의 번제물이 되는 역사가 이 속에 전부 감추어진 비밀 가운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깊이 연구해 보면 어린양이 피 흘려 죽어 제물이 되는 모습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모형과 실체를 이루는 신비로운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곳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 삶과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죽고 따라가는 이 모습이 반드시 성도가 이와같이 옛 사람이 죽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하고 거듭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재료나 어린양이 죽어 희생되는 과정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 모습과 죽으시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일란성 쌍둥이 같이 모든 것이 하나가 되고 일치하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결단코 천국에 이를 수 없음을 볼 때에 성막의 모든 비밀들을 캐내어 자세하게 감추인 비밀을 공부하지 아니하고 결단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2. 조각목

조각목은 싯딤나무로만 만들도록 했습니다. 좋은 나무와 목재가 얼마나 많은데 왜 아카시아 나무의 일종으로 가장 딱딱하고 거친 나무로 사용하라고 하셨을까?

이 나무는 광야의 모진 모래 바람과 거칠고 불규칙하게 자라나 관상수로나 기둥이나 재목으로 그 어떤 것에도 쓸모없는 나무인데 왜 하필 이 나무로 번제단을 만들라 했는가!

가시가 많고 곧게 자라지 아니하여 불규칙하여 어디에 쓸만한 곳이 하나도 없는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상하게 번제단 뿐 아니라 모든 성막의 기구들을 싯딤나무로 하라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먼저 알아야합니다.

 

1) 조각목의 영적 의미

(1)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53:2~4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

                 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 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

                 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

                 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

                 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

                 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

                 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탄생조차 여관 방 하나 빌리지 못하고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고 말구유에 누일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으며 헤롯에게 쫓겨 애굽으로 피난하고 돌아와서 유다 땅에서 가장 못 사는 산간 오지의 나사렛에서 자라시고 공생에도 노상에서 사시며 옷도 두 벌이 없었고 전대도 없고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받으시고 억울한 죄의 누명과 체포되시고 억울한 재판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셨는데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옷 벗김과 등에 채찍으로 다 찢기시고 머리에는 5㎝ 길이의 가시가 수백개 박힌 면류관으로 씌워 머리와 이마가 다 찢기시고 손과 발에 십자가로 못 박았으며 허리를 창에 찔리시고 처참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체포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억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조롱과 핍박과 환난 고통을 다 받으시되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이렇게 가장 고통스런 천대와 핍박과 조롱 속에 죽으셔야 했는가! 조각목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육체로서는 무엇 하나 쓰일만한 아름다운 모습은 커녕 멸시와 천대를 받고 비참하게 찢겨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구원 얻은 성도들의 모든 죄짐을 다 지시고 죄인이 당할 모든 형벌을 다 당하셨기 때문에 죄인으로서의 출생과 사는 모습과 형벌과 십자가의 죽음은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바로 이 죽음을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므로 육신을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사신 삶은 모든 구원 성도의 삶의 원본이 되고 모델이 되어야 했으므로 육체는 결단코 이 땅에서 행복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영화를 누리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 이 삶을 좇아 그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육체의 영화는 절대로 아름다웁고 황홀하고 행복한 삶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우리 성도를 의미합니다.

성막에 쓰이는 모든 조각목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와 성도의 육체를 가리킵니다. 싯딤나무처럼 관상수로나 재목으로나 기둥으로나 목재로 쓸만한 아무 가치가 없었다는 것은 우리의 육체가 육신적 삶에 있어 이렇게 못된 죄인이요 허망하고 허탄하고 헛되고 무가치한 쓸모가 없는 죄인이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아궁이에 던져질 수 밖에 없는 쓸모 없고 볼품 없는 싯딤나무였습니다.

이런 육체의 삶이 목적이나 목표로 드러나는 삶은 가시와 볼품 없고 쓸모 없고 죄와 허물과 죄악 투성이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고백한 솔로몬이 왕으로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세와 상아와 금은 보석으로된 보좌에 40년 권좌를 누려 보고 700인의 후궁이 있었고 최고의 지혜로 만왕과 만민의 지혜를 배우려는 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존경과 사랑과 영화를 받았으나 이런 삶이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모세에게 성막을 만들 때 성소와 지성소와 법궤와 떡상, 향단, 번제단 등 조각목이 들어가는 것은 그 조각목이 드러나지 않도록 전부 놋이나 금으로 감싸 나무 자체가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육체의 삶을 절대로 드러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롬8:13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

 

육신대로, 육체대로 살면 하나님과 원수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고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거나 굴복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드시 감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각목인 쓸모 없고 가치 없고 헛된 것을 다 금으로 싸라는 것입니다. 금으로 싸서 보이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금은 믿음을 상징하며 이 믿음이 바로 정금을 가리키는데 믿음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로 감싸고 바꾸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으로 싸매라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우리의 죄인의 모습, 더럽고 헛되고 무가치한 육체의 삶, 그래서 이 땅에 가지고 있는 성공이나 출세나 영화나 행복의 육신의 삶과 세속적인 삶의 이 욕망을 반드시 금으로 싸 감추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으로 싸매어 육체의 죄인의 삶의 본색을 드러내지 말고 온전히 덮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음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므로 그때에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3. 번제단의 크기

출27:1 <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

             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

 

하나님께서 제사 드릴 때 제물을 태우기 위한 단을 조각목으로 만든 후 놋으로 쌌습니다. 때문에 일명 '놋단'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단은 족장 시대에 쓰던 토단이나 돌단과 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동식 단이었으므로 이를 안치할 때는 먼저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놋단을 안치했습니다. 네모 반듯하게 만들었는데 고대 이방 종교에서는 삼각형 또는 원형의 단이 대부분이었고 이스라엘의 단은 이와 같이 사각형으로 만들어 그들과 같이 하지 않고 구별했던 것입니다.

 

크기 = 가로 - 2.28m    세로 - 2.28m     높이 - 1.37m

성막 안의 기구들 중 가장 컸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가로 = 9.1m      세로 = 9.1m        높이 = 4.5m의 거대한 번제단이었습니다.

 

4. 사각형의 정방형

성막은 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성소와 지성소와 번제단도 다 사각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막은 천국의 모형이요 교회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형은 실체와 같아야합니다.

그 증명이 계21장에 나와 있습니다.

 

계21:16 < 그 성은 네모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

               가 같더라 >

 

천년왕국의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가 정방형으로 12,000 스다디온의 길이가 됩니다. 이것을 미터 법으로 환산하면 사방이 1,500마일 정도 되고 이것은 또 225만 평방마일이 된다는 것으로 영국의 런던이 117평방 마일이니까 이것의 약 530만 배나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전 안에 거할 수 있는 수가 530억이라 하니 엄청난 크기의 성전이라 볼수 있습니다.

계21장은 천년왕국장이고 새 예루살렘 성전의 모양이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지상의 성막에는 단 하나의 문이 동쪽에 있었지만 천년왕국의 새 예루살렘은 동,서,남,북 4면에 3개씩 12개의 문이 있고 문마다 천사가 지키고 12 진주 문과 12사도와 12지파가 있고 12,000 스다디온이라는 12수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12수는 교회 조직수라는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이 12,000 스다디온이란 교회의 충만수를 의미하므로 완전한 교회, 완성된 교회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세상과 사단 마귀와 옛 사람 죄인의 본질인 나의 육과 싸워야 하기 때문에 고통과 눈물과 슬픔과 전쟁과 온역과 두려움과 근심, 시기, 살인, 음란의 세월을 살고 선과 악의 체험 속에서 선으로 승리해야 하는 천국인의 훈련으로 고통의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고 훈련과 시험의 연단과 양육과 교육이 있어야 했으나 천년왕국은 이런 모든 악의 요소들이 사라지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의 충만한 사랑과 기쁨과 행복으로 황홀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에 거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번제단은 예수그리스도의 육체가 찢어지고 피 흘리고 고통 중에 죽어가는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지상의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고난없이 우리가 속죄 받을 길이 없었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 삶과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하는 우리로서 고난없이 속죄의 은총을 입을 수가 없고 고난 없이 천국인의 훈련과 양육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각은 이 세상의 동서남북의 수요 고통의 수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고통의 충만함을 겪은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행복과 기쁨의 충만함을  영원히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21:2 < 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

             여 단장한 것 같더라 >

 

왜 새 예루살렘이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요 몸이라 했는데 천년왕국의 예루살렘은 신부의 단장한 것 같다고 했을까!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된 성도가 이때에는 한 몸된 부부의 짝을 이루고 하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완전히 회복되어 하나가 되므로 완전한 천국인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지상에 있는 성전의 모습을 연상하면 안됩니다. 거기는 진주와 보석으로 된 성전이라 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것이지 실제의 진주 보석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에 비유는 했으나 이것이 10억분의 1도 안되는 비유입니다.

비교가 될 수 없다하여 '나노'라는 말을 쓰는데 너무나 비교되지 아니하여 예수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말 잘하는 사도바울도 천국에 대해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상상할 수 없는 황홀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곳이므로 이 나라를 상속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십자가의 피를 흘리시고 제물이 되었듯이 우리가 이 고난의 길을 따라가지 아니하면 이 천국은 결단코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합니다.

 

5. 네 모퉁이 위에 뿔로 만들었습니다.

출27:2 < 그 네 모퉁이 위에 뿔로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 >

 

=  "케렌" - '상아, 산꼭대기, 광선'이란 뜻도 있지만 성경에서

        뿔은 권세와 힘과 능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제단에는 이런 뿔이 달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기서의 뿔의 용도는

① 장식용으로 만들어 놓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② 희생 제물이나 다른 것들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장치 했고

③ 희생 제물을 바칠 때 짐승을 묶어두기 위한 것으로 쓰였습니다

 

시118:27 <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우리에게 비취셨으니 줄로 희

                생을 제단 뿔에 멜지어다 >

 

※ 뿔의 영적 의미

왕상1:50 < 아도니야는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의

                뿔을 잡으니 >

 

아도니야는 다윗의 아들로서 왕의 자리를 노렸으나 솔로몬이 왕이 되자 분노와 질투심으로 솔로몬을 몰아내려고 모반을 일으키나 실패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모면하려고 성전에 들어가 제단의 뿔을 잡았습니다. 이는 어떤 죄인이라도 제단의 뿔을 잡으면 죽일 수 없다는 뿔의 권세 때문이었는데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권세를 의미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눅1:69 <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켰으

             니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의 권세야말로 모든 인류가 죄인 되어 사단의 착고에 매여 있고 영 죽을 죄인들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뿔의 권세로 우리를 구원하신 능력과 힘과 권세를 의미합니다.

 

계13:1 < 또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

             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

             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

 

계시록 13장은 짐승의 장인데 짐승은 그리스도 밖의 사람으로 주님의 형상에 이르지 못하고 죄인의 형상, 곧 짐승의 형상으로 그리스도로 위장하여 세계적인 영웅이 하나 나타나는데 바로 사단의 용의 권세를 힘 입고 세계를 통일하고 자칭 그리스도라, 하나님이라 하면서 이 세상과 통합된 종교의 권세를 다 가지고 세계를 장악하는 인물이요 적그리스도입니다.

이가 뿔을 열개나 가지고 나타난다는 것은 10은 땅의 만수로서 세상의 권세와 힘과 능력을 다 장악하고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핍박할 인물로 이로 인하여 올 마지막 7년의 대환난은 창세 이래로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을 환난이라고 했습니다.

 

계13:11 < 내가 또 보니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

 

전자의 첫째 짐승은 바다 곧 온 세상을 장악할 적그리스도요 후자의 짐승은 종교를 통합하고 종교계의 대표로 나타난 거짓 선지자입니다. 이들이 땅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하늘 신령한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이 아니라 타락한 종들, 하나님을 배도하고 배교하고 반역하는 타락하고 부패한 종들이 나타나서 참종과 기독교인들을 핍박할 짐승인 것입니다. 이들이 또한 두 뿔을 가지고 나타난다는 것은 세상 권세와 종교계의 권세를 가지고 대환난 때에 적그리스도의 심복 노릇을 하며 그리스도인들을 죽음과 타락의 고통 속에 몰아넣을 거짓 선지자들인 것입니다.

이들이 가진 두 뿔은 많은 참된 종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많은 성도들을 실족시켜 죽음과 멸망에 이르게 할 자들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뿔은 권세와 능력과 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힘과 능력이 세상을 이기고 적그리스도를 이기고 거짓 선지자를 이길만한 권세와 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은 그리스도의 뿔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권세와 뿔은 우리가 믿음으로만 사용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능력이요 권세입니다.

 

6. 단을 놋으로 쌌음.

출27:2 <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쌀지며 >

 

놋은 금속 중에 가장 강합니다. 따라서 번제단이 불에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놋으로 쌌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쓰여져 있는 문자대로 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 문자 속에 감취인 실제적인 영적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다.

 

※ 놋의 영적 의미

민21:9 <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

             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훈련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행7:38에는 광야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이는 바로 우리 성도가 교회에서 천국인의 훈련과 양육을 받는 것의 모형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은 성도의 모형인데 이스라엘이 광야의 삶의 고통으로 인하여 불평과 원망을 터뜨리자 불뱀을 보내어 물게합니다. 이는 광야에 있는 무서운 독사였는데 이 뱀에 물려 고통받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여호와께서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이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살리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모습인데 왜 하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장대에 달린 놋뱀으로 상징되었는가! 사단입니다. 이요 를 상징합니다.

심판과 공의를 의미합니다. 장대는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이를 바라본 자가 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단의 권세도 함께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사단의 권세를 십자가에 못박아 심판을 했다는 말입니다. 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성취하고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와 사단의 권세를 심판하신 심판 주로 믿는 자들에게는 죄사함의 권세가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로 이 십자가에 달린 죄인으로 사단의 권세와 함께 모든 죄를 지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본 자에게 구원의 은총이 베풀어 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 곧 심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계1:15 <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 >

 

사도요한에게 심판의 주로 재림의 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발이 빛난 주석이라고 했습니다.

행위를 말함이요 주석은 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종말에 재림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것은 심판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번제단을 놋으로 싼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죄의 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 놋 제단은 바로 죄의 심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7. 번제단의 부속 그릇들

출27:1~8 <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 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그

                 네 모퉁이 위에 뿔을 만들되 그 뿔이 그것에 연하게

                 하고 그 단을 놋으로 쌀지며 재물 담는 통과 부삽과

                 대야와 고기 갈고리와 불 옮기는 그릇을 만들되 단의

                 그릇을 다 놋으로 만들지며 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

                 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고 그

                 물을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곧 단 절반에 오르게 할

                 지며 또 그 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

                 고 놋으로 쌀지며 단 양편 고리에 그 궤를 꿰어 단을

                 메게 할 지며 단을 널판으로 비게 만들되 산에서 네게

                 보인 대로 그들이 만들지니라 >

 

행9:15 <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

             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딤후2:20~21 <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이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

                      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

                      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

                      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 

                      함이 되리라 >

 

성경은 이 땅에 보내진 모든 인류를 그릇으로 비유하고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 그릇, 은 그릇은 왕으로 혹은 제사장으로 혹은 신령하고 깨끗한 종이나 성도를 비유하고 귀하게 쓰는가하면 천하게 쓰는 그릇 등 각양각색의 쓰시는 모양을 그릇의 천하고 귀함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릇이 무엇에 쓰이고 무엇이 담겨 있는가에 따라 귀하고 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릇이 깨끗하면 깨끗하고 귀한 것을 담고 그릇이 더러우면 더러운 것을 담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릇의 깨끗하고 더러움은 바로 종들이나 성도의 할 탓이지 하나님께서 애초부터 작정하고 예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을 예수님께서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했습니다. 그릇이 크다고 무조건 좋은 일에 쓰임받고 그릇이 작다고 천하고 보잘 것없이 쓰임 받는 것도 아닙니다.

질 그릇이나 나무 그릇이라고 천하게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릇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밥을 담으면 밥 그릇이 될 것이요 국을 담으면 국 그릇이됩니다.

찬이 담겨 있으면 찬 그릇이 됩니다. 보석이 담겨 있으면 보석 그릇이 되고 진주가 담겨 있으면 진주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때 예수 그리스도가 담겨져 있는 그릇이면 하나님께서 귀하게 깨끗하게 쓰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그릇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 그릇입니다. 이가 바로 거듭난 백성이요 천국인인 것입니다.

 

딤후2:21 <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케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

                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

 

그릇을 어떻게 하면 깨끗케 할 수 있는가?

물과 불로서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 물은 엡5:26에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불은 성령입니다. 더러운 것은 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죄를 씻는 것은 말씀과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곧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깨끗하다는 것이요 깨끗한 이가 의인이요 거듭난 자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으로 그리스도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자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깨끗한 자만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번제단의 그릇에서 성소와 지성소의 쓰임받는 금잔이나 그릇이나 부삽이나 젖가락이나 각종 기구와 그릇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다 성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쓰임받는 기구와 그릇이라는 것은 곧 구원의 성도를 의미하는데 이는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기구와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에는 무형교회가 있고 유형교회가 있습니다.

무형교회는 성도 개개인의 교회요 유형교회는 "에클레시아"(거룩한 무리의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수백, 수천, 수만, 심지어 수십만의 성도들이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아무 쓸모없이 왔다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깨끗한 그릇이고 하나님께 합당한 그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왜 이 시대 대형 교회가 늘어나고 이 대형교회에 한꺼번에 많은 성도들이 모이는가! 이 현상은 바로 말세 지말에 예수 그리스도를 고난없고 십자가 없이 편하게 믿자는 육적 성도 다시 말해서 거듭나지 아니한 성도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요 바로 이들이 깨끗치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 말세에 많은 주의 종들이 길러지고 이들이 곳곳에 교회를 설립하고 있습니다. 이 현상도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어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런 현상을 통해 두 가지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① 많아지는 교회를 통해 천국인을 훈련시키는데 대형교회에서

    일할 수 없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할수 있는 기회를 주

    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작으면 주의 종이 무능력한 것같고 진리가 없고 구원도 없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말세에는 무조건 무엇이든지 커야되고 숫자가 많아야합니다. 작은 교회들은 지금 많이 도태되어 있고 또 설립이 되고 있습니다. 진정 깨끗한 그릇이요 거듭난 자라면 대형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왔다갔다 하지 아니합니다.

작은 교회지만 꼭 쓰임받고 없어서는 안될 그릇이 되기 위해 여기를 찾아가는 것이 거듭난 자의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깨끗한 그릇인 것입니다.

 

② 음녀 교회의 타락하고 부패하는 현상입니다. 

 

쓰임받지 못하는 그릇들은 왜 일까요? 그릇이 더러워서입니다.

아직도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육적 성도로 남아있고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을 받고 훈련을 받고 어떻게 양육을 받아 천국인이 되느냐가 아니라 자기가 이 땅에 누릴 영화와 성공과 출세와 행복과 이 땅의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육의 만족을 위해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하고 이 땅의 것으로 영화와 행복을 누리려는 자들이 왜 그렇겠습니까!

바로 죄를 해결하지 않고 깨끗하게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실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으니까 소망하고 목적과 목표를 삼을 것이 이 땅의 것으로 행복과 영화를 누리는 삶을 최고로 만족을 하고 사는 자들입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버림을 받을 자들인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나 사도바울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했는가? 자신의 그릇이 더러워 하나님께서 쓰시지 않고 버림을 받을까 두려워 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에서 제사에 쓰이는 그릇들이

① 고기 대야  ② 고기 갈고리 ③ 불 옮기는 그릇 ④ 부

⑤ 재 담는 그릇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 이 시대 예배를 드리는데 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그릇들인데 과연 어떤 성도를 의미하는지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고기 대야 = 번제단에 올라갈 고기를 담는 그릇이었습니다.

 

여기서 번제단에 바쳐질 고기라면 이는 죄인을 가리키고 거듭나지 아니한 육적 성도를 가리킵니다. 이는 거듭나지 아니한 육적 성도와 죄인인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이 되어 제사가 될 수 있도록 즉 거듭날 수 있도록 죄인의 본성이나 속성이나 근성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도록 돕는 그릇입니다.

교회에 오는 새 신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전도한 신자가 있고 또 거듭나지 아니하여 아직도 세속적 육의 삶을 사는 죄인의 습성대로 사는 육의 성도가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영접하고 깨닫고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의 옛사람의 죄성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렇게 초신자나 믿음의 초보, 신앙의 초보, 그리스도 도의 초보에 있는 자들을 자신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영적 성도로 회개케 하고 거듭나게 도와주는 그릇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고기 갈고리 = 고기 그릇의 제물인 고기를 찍어서 번제단의 불

                        위에 올려 놓고 고기가 잘 태워지도록 뒤집고 옮

                        기는 기구로서 낚시 모양의 갈고리로 쇠로 만든

                        기구입니다.

 

그러면 갈고리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교회에는 많은 신자들이 왔다가 다시 나갑니다. 이때 갈고리로 이를 꿰어 반드시 다시 끌고 오는 성도가 있습니다.

믿음이 없거나 실족하거나 실망했거나 상처를 받았거나 시험에 들었거나 해서 교회에 나오지 아니하는 성도를 갈고리에 꿰어 어쩔수없이 붙잡혀 나올 수밖에 없도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물질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혹은 봉사하고 어떤 희생을 해서든지 반드시 꿰어 오는 갈고리의 역할을 하여 성도가 믿음으로 거듭나게 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저도 어떤 여집사님이 나의 필요한 물질이라든지 물건이라든지 나의 필요한 것은 어떻게해서라도 갖다 주고 나를 위하여 1년의 새벽기도를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시로 우리 집에 들러 우리가 필요한 것은 다 주고 봉사했습니다.

그리고 1년만에 오늘 한번만 예배에 참여하면 점심식사를 근사하게 대접하겠다는 것입니다. 받은 것이 많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영락없는 갈고리에 꿰인 모습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에 나가게 된 계기였고 지금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여집사님의 갈고리는 여지없이 그 기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믿음이 들어가기까지 말할 수 없는 희생이있었습니다.

 

◈ 불 옮기는 그릇 = 고기가 온전히 태워질수 있도록 번제단에 불

                             을 옮기는 그릇입니다.

 

번제단의 불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도가 성령의 불로 온전히 태워지고 회개하고 거듭날 수 있도록 돕는 성령이 충만한 성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옛사람의 죄인의 본성이나 속성이나 근성이 성령의 불로 태워지고 지져져 온전한 회개와 거듭남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물이 되고 온전한 예배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그 성도가 시험들었을 때에 말씀으로 기도로 물질로 그리스도의 온갖 사랑의 불로 잘 가르치고 인도하여 거듭나게 하는 충직한 성도를 말합니다.

 

◈ 부삽 = 제단에서 제물이 타면 재가 생깁니다. 부삽은 그 재를

              긁어서 재통에 담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재가 많이 쌓이게 되면 고기가 온전히 타지도 않고 그을음이 심하고 제단의 불도 활활 타오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방해되는 재를 긁어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의 영적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교회에 있어서는 안되는 많은 문제거리들을 말합니다.

교회의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시험거리나 문제 거리들이 있으면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때에 이런 시험이나 문제거리들을 다 긁어 모아 처리하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목사나 장로나 교회나 성도에게 어떤 교회의 환난이나 문제 거리들이 있고 시험거리가 있으면 교회의 말씀의 역사나 성령의 역사는 이런 쓸모없는 재들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됩니다.

성도가 회개하고 거듭나고 자신을 온전한 제물로 드릴 수 있도록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강하게 도와주는 이 손길이야말로 교회에 없어서는 안될 그릇입니다.

 

◈ 재통 = 부삽으로 긁어모은 재들을 담아 밖으로 갖다 버리는 것

              입니다.

 

재를 담는 그릇은 뚜껑도 있는데 재가 날리지 않도록 재를 담아 진 밖으로 처리하는 그릇인데 성도가 처음에 교회에 와서 온전한 제물이 되기까지 수많은 재가 있기 마련이고 이런 재들을 다 쓸어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하는 것은 정녕 희생이 없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많은 재같은 환난이나 시험이나 문제들로 인하여 교회가 둘로 갈라지고 성도들이 나가고 영광을 가리는 일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교회는 목사의 비리로 인하여 성령의 불의 역사가 꺼지려는 순간에 이런 문제들을 끌어안고 희생하는 성도가 있고 어떤 장로는 목사님이 교통사고로 인해 목회의 위기에 처하고 말씀 연구가 치명적 위기에 있을 때 일억 사천만원이라는 거금을 성도들이 모르게 자신이 처리하여 교회와 목사의 목회 위기에서 건진 장로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일들은 재통의 역할을 감당하는 성도의 아름다운 기구와 그릇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8. 단의 놋으로 그물을 만듬.

출27:4 < 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고 >

 

그물 = "레쉬트" - 짐승을 잡을 때 쓰는 그물이나 망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번제단 중간에 걸치게 하

          는 놋으로 만든 망인데 제물을 태우는데 이 망

          이 고기가 더 잘타도록 불과 간격을 맞춰주는

          놋 그물입니다. 고기는 완전하게 타게하고 타는

          재들은 아래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출27:5 < 그물을 단 사면 가장자리 아래 곧 단 절반에 오르게 할

             지며 >

 

번제단의 높이가 1.37cm입니다. 그물은 그 정 중앙인 68.5cm지점에 위치하여 일치했는데 이렇게 번제단의 안 중앙에 위치 시킨 이유는

 

① 제물을 보다 용이하게 태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물이 없거나 그냥 불 위에 올려지거나 너무 불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고기가 온전히 태워지지 아니하여 그을음과 연기와 냄새로 곤혹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성도가 거듭나도록 온전히 인도하지 못하고 이 제물이 잘못태워질 때의 역한 냄새와 연기는 교회를 소란과 어두움으로 살아있는 육으로 인하여 많은 말썽의 소지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② 타고 남은 재가 쉽게 밑으로 잘 빠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고기가 태워지고 남은 재가 밑으로 잘 빠지게 한다는 것은 고기를 깨끗하고 골고루 온전히 태워지게 하고 하나님 앞에 거듭나고 정결하게 온전히 바칠 수 있게 한다는 것이요 성도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고 말씀과 성령의 불로 온전히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바쳐지게 한다는 것으로 온전한 성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신학이나 교리나 신앙에 있어 올바르게 인도하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주의 종 뿐만 아니라 이렇게 성도와 늘 함께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의 은총을 바르게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신 그 길을 따르고 사신 그 삶을 따르도록 자기 자신의 본을 보이면서 정통 신앙의 코스를 보여 인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처음부터 잘못되면 신비주의나 기복주의 축복론에 빠져 병이나 고치고 문제 해결받고 이 땅의 복으로만 만족하려 한다든가 혹은 고상하게 믿는다고 윤리나 도덕적 철학적 신앙사상에 빠진다면 역한 냄새가 풍기고 온전히 하나님께 제물이 되지 못해 실패보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신앙이란 이렇게 처음부터 죄 문제의 해결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고난의 삶과 사신 삶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격적 품성과 형상으로 이끌어가야 온전한 제물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온전한 신앙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인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목적하시는 천국의 하나님의 백성의 자질과 형상과 인격과 본을 따라 가르치고 훈련과 온전한 양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9. 단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었습니다.

출27:4 < 단을 위하여 놋으로 그물을 만들고 그 위 네 모퉁이에

             놋고리 넷을 만들고 >

 

단 네 모퉁이의 네 고리가 무엇인가! 이는 번제단을 이동할 때에 채를 끼워 어깨에 메기 위한 고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동그랗게 만든 고리였는데 고리란 영어로 '링'으로 반지를 의미하기도 하는 약속, 언약을 의미합니다.

번제단은 성막이 이동할 때마다 채를 고리에 꿰어 그 채를 어깨에 메고 이동을 했습니다. 이는 번제단과 멘 채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연결의 고리였습니다. 채를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번제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몸과 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반드시 연계의 고리가 필요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이 속죄의 언약은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던 것은 계명의 율법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없는 예수 그리스도 있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 없는 십자가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언약의 관계야 말로 떨어져서는 안 될 고리로 영원한 구속의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고리의 언약, 이것이 없으면 우리의 속죄와 구원이 헛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반드시 어깨에 메야했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지신 것처럼 우리도 반드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하6장은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올 때에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에 모셔 오는데 실패를 봅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궤를 수레에 싣고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성막에 있는 모든 기구들은 수레에 싣는 것이 아닙니다. 고핫 자손이 어깨에 메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고핫은 제사장 지파인 레위 자손입니다. 왜 꼭 제사장이 메어야 했을까요?

계1:6, 5:10에는 제사장이 구원 성도의 예표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꼭 어깨에 메어야 한다는 것은 구원의 성도가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신 그 길 따라가는 것의 예표입니다. 반드시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레에 실었다는 것은 힘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교회의 일을, 구원의 사역을 편하고 안일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말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고 경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일을 삶의 목적과 목표로 삼지 않고 이 땅의 영화와 출세와 행복과 축복을 위한 삶으로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주객이 전도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타락의 본질은 이 땅이 천국인의 훈련을 위하여 교육과 양육을 위한 피조물의 세계입니다. 이는 마치 군대에 들어간 훈련병이 군병의 사명과 훈련의 원칙과 법칙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살겠다고 고집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100% 징계를 받고 전시에는 총살형을 당할 수밖에 없는 무지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히 거하려면 이 땅에서 훈련과 양육과 교육을 받고 천국인의 자질과 자격이 있는지의 시험을 통과해야합니다.

이 땅은 우리가 절대로 행복을 누리고 영화를 누리려고 온 땅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우리를 십자가 군병이라고 한 이유도 여기 있는 것입니다. 왜 성도들의 영혼이 거듭나지 못하고 타락하고 부패하여 실패를 보는가!

자신이 천국인으로서 이 땅의 훈련병으로 철저히 교육과 양육을 받아야 할 성도가 이 땅에서 먹고 마시고 행복과 영화를 누리겠다는 발상이 이미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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