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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단 (2)
운영자 2007-10-17 추천 0 댓글 0 조회 919

10. 조각목으로 만든 채를 놋으로 싸서 양편 고리에 꿰어

     메었다.

출27:6~7 < 또 그 단을 위하여 채를 만들되 조각목으로 만들고

                 놋으로 쌀지며 단 양편 고리에 그 채를 꿰어 단을 메

                 게 할지며 >

 

1) 채를 만들라

= 기구의 고리에 꿰어 양 옆으로 길게 댄 막대기(Pole)를 가리

       킵니다.

 

번제단과 떡상과 향단과 법궤에는 반드시 채를 꿰어 어깨에 메어야 했는데 왜 이렇게 어깨에 메어야 했고 손을 대지 못하게 했는가! 성물에 손을 댄다는 것을 철저히 금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을 단순히 이동하기에 편리하도록 이렇게 했다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것은 다 철학이요 윤리 도덕적 해석입니다. 반드시 채를 만들어 어깨에 메어야 하는 것은 더러운 손을 성물에 대지 않도록 하는 매개체가 되었는데 이 채가 바로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마16:24 <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

               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

엡2;16 <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

 

우리는 더러운 죄인이요 하나님과 원수된 자로 하나님과 거룩한 성물들로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해결하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신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없이 우리가 하나님과 절대로 화목할 수 없습니다.

채는 또 놋으로 싸라고 했는데 놋은 심판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곧 죄인을 심판하는 형틀이었습니다. 또한 십계명은 수직적 하나님과의 관계와 수평적 형제들과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 십자가의 완성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과 모든 죄를 십자가에 못박아 철저히 심판하지 않고서는 하나님과의 화목과 하나님 나라의 천국백성으로서의 자격은 영원히 상실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있어야 하나님과 만나고 성물과 접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말해서 십자가 없는 고난, 십자가 없는 예배와 기도, 헌물, 봉사, 충성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십자가 없는 성도들이 대다수입니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 희생의 죽음이 없는 십자가를 진자들이 허다합니다. 이는 바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신 그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일을 수레에 싣고 가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십자가는 벗어버리고 이 땅에서 영화와 부귀와 행복과 축복을 받아 누리면서 주의 일은 힘 없고 가난하고 무지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고 자신들은 물질로 헌금이나 하고 예우받고 존경받는 것으로 교회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높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실을 하는 자들의 모습이 교회의 일을, 주의 일을 수레에 싣고 가는 자들입니다.

자신은 성공과 지식과 권세와 부와 출세로 입으로만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 일 때문에 주의 일 때문에 자신은 절대로 십자가를 지지 않고 돈으로 입으로 때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없는 자들이요 수레에 싣고 주님 일을 하고자 하는 것 때문에 수레가 흔들릴 때 웃사처럼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채는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딤전2;5 <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요1:14)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무엇을 하기 위해 이용하는 방법과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나의 본체시오 나의 주인이요 하나님이시오 나의 영원히 모셔야할 신랑입니다.

거듭나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요 나의 본체요 하나님이시라 어떻게 모셔야 하고 섬기고 사랑해야 할지를 압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아니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성공과 출세와 권세와 축복과 영화 행복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수단으로 삼고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하는 성도들입니다. 구원의 주, 속죄의 주, 나의 생명이시고 신랑이요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축복과 행복의 수단과 방법으로 문제 해결의 도깨비 방망이이나 마스터 키로 이용하고 자기가 이 땅에서 성취코자 하는 것들의 수단을 삼고 있으면서 이것을 믿음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 아주 큰 오류와 착각 속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하나님의 일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경외와 경배의 대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본체요 생명이므로 구원을 이루기 위해 이분만을 따라 살고 십자가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과 목표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께 향해 있고 이 땅의 삶의 모든 초점과 포인트가 예수 그리스도께 맞추어져 있어야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자기가 주인이고 자기가 본체입니다.

자기가 중심인물이 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 삶과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이 땅에 누리고 추구하는 비젼, 소망, 행복, 성공을 목표로 하고 여기에 전심을 다하고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이 목표를 이루어 줄 수 있는 문제 해결의 마스터 키로 도깨비 방망이로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성경 66권이라는 방대한 책을 주셨을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깨닫고 천국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이 길이 험하고 협착하고 고통스런 죽음의 십자가의 길이요 좁은 문이고 좁은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 길을 찾는 이가 적다고 했습니다. 이는 구원의 수가 적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비밀이기도합니다.

분명히 넓은 문으로 넓은 길로 가고 있는 많은 무리가 결코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고 할 수만 있으면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전적이고도 무조건적이고 불가항력적 은혜와 사랑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오늘날 성도들이 큰 오류와 착각 속에 잘못 믿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이 땅에서 자기 목표와 목적 달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심과 정욕과 탐심을 버리고 이런 옛사람의 탐욕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으로 거룩하게 되고 신의 성품에 이르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착각을 바로 깨닫지 않는 한 많은 멸망과 심판이 예고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구원의 무리가 심히 적은 것을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거듭남이 적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거듭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인데 왜 그런지 번제단의 영적 의미에서 이런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 번제단의 영적 의미 }

하나님께서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고 뜰과 울타리를 만들어 동쪽에 유일하게 문을 만들고 그 문을 통과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번제단입니다. 성막 안에 여러 기구가 있는데 왜 제일 먼저 번제단을 두었을까!

 

출40:6 < 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

      29 < 또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

             라 >

 

하나님께서 지성소의 법궤의 뚜껑인 시온소에 좌정하여 계셨는데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를 가지고 제단에 뿌리고 지성소의 속죄소에 이 피를 드려야 했습니다. 범죄하여 죄인이고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질 죄인으로 하나님을 뵈옵거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뵈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 대신 희생되어야 할 제물이 필요했는데 소나 양이나 비둘기 등을 속죄제물로 드렸습니다.

 

1. 번제단의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

    형입니다.

 

롬3:25 <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

             은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

             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

             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

 

요일2:2 <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

               니라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

 

성막은 천국의 모형이요 교회의 모형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성막을 주셨는가!

이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백성의 천국인의 훈련과 양육의 구원의 비밀이 다 들어있는 신비로운 제도입니다.

그러므로 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는지의 성경 66권의 집약이 바로 성막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만세 전의 계획과 섭리와 경륜의 비밀과 뜻이 다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코자 하는 하나님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탄생시키고 훈련과 양육과 교육과 시험의 연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맏아들이 되시고 그의 후사인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로 천국백성을 삼으시고 그들로 영원무궁토록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성막은 바로 구약시대의 모형이었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되었고 요한 계시록은 영과 육의 완성으로 천국인의 훈련과 선발의 완결임을 볼 수 있는데 여기 모든 과정이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막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속사의 비밀과 교회의 비밀이 이 속에 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막을 모르면 구원의 영적 비밀과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 성경의 비밀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막 공부는 사실 성경 전체의 공부인 아주 핵심적인 부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막은 하나님 나라의 성전을 의미하기도 하고 내 마음 속에 이루어야 하는 심령의 전의 모형이기도 한지라 우리 마음의 성전이 완성되지 않고 거듭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마음의 성전의 완성은 거듭남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국 교회의 여러 거듭남의 잘못된 구원관을 반드시 정립해야 비로소 완전한 구원을 이루고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막의 번제단에서 제물인 어린양의 죽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인데 그의 후사가 되는 우리 성도의 옛사람의 죽음이 기필코 성취되어야 함을 깊이 깨닫고 제물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길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이 없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화목과 속죄받을 수 없음을 알고 철저하게 깨우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1) 제물의 모습

레1:3 <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드릴지니라 >

 

(1) 흠 없는 것으로 제물을 드리라.

왜 제물이 흠이 없어야 된다는 것입니까!

제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에 모형과 실체는 같아야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흠과 티나 점이 없고 죄가 없이 너무나 깨끗한 의인이었기에 구약의 제물인 짐승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기 때문에 흠없고 티없이 정결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이 제사를 열납하셨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헌신과 기도와 절기와 모든 일에 있어 이렇게 정결해야 우리의 믿음의 삶이 하나님 앞에 열납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짐승인 소나 양, 비둘기가 흠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면 이 제물을 바친 자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구약에서는 육신의 죽음으로 나타나고 신약의 지금에는 그 영혼이 죽음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우리의 예배와 안식과 절기와 기도와 봉사가 하나님께 열납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죄인의 모습 그대로 흠과 티와 죄가 있는 자가 와서 드리는 예배와 예물과 기도와 헌신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흠이 없이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고 헌신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새 생명을 얻고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장사 지낸 바 되고 거듭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비로소 흠이 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듭나야 정결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교제와 교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지 거듭남이 없이 바쳐지는 우리는 절대로 온전하고 흠 없는 제물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수컷으로 드리라

롬8:29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

             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남자였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씨가 남자에게 있고 그래서 아담에게 생명의 씨가 있고 후에 하와(여자)를 창조하시면서 보필자, 부부의 짝으로 창조하셨는데 이는 생육과 번성을 위한 반려자로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신 것이 최초의 부부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어린아이, 부녀, 아내, 과부, 늙은이는 인구 수에 들지 못했던 이유가 이들에게는 생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원리가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씨가 되어 여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인 교회를 탄생시켜 예수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하셨으니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사신 교회요 아내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한 몸을 이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 거듭난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부부의 짝이 되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 인구 수에 들어가지도 못하거니와 구약의 인구 수에 들어가지 못했듯이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 없이 절대로 생명 있는 존재로서 천국인의 인구 수에 들어갈 수 없다는 비밀인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부부가 되지 아니하고 천국인이 절대로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 제물을 잡는 방법

레1:5~6 <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

                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번제의 가죽을 벗기고 각

                을 뜰 것이요 >

 

제사장들이 소나 양을 잡을 때 자기 마음대로 잡는 것이 아닙니다. 잡는 순서가 있습니다. 죽이는 방법도, 가죽을 벗기는 방법도, 각을 뜨는 것도, 피를 흘리게 하되 그릇에 담는 것도 철저하게 훈련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그 잡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왜 하나님께서 이 방법까지 가르쳐 주셔야 했는가?

바로 실체의 제물이 되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이렇게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양을 잡을 때에 칼로 옆구리를 찔러 칼이 심장을 뚫어 물과 피를 다 쏟으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죽으실 것을 아셨기에 구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양이 죽을 때에 꼭 이와 같이 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 가죽이 벗겨집니다 - 우리 주님은 빌라도 법정에서 옷이 벗겨

    지고 채찍으로 등이 다 찢기셨습니다.

 

★ 각을 떴습니다 - 어린양의 몸이 각을 뜨므로 갈기갈기 찢겨지

    듯 예수님의 몸이 갈기갈기 찢기셨습니다. 머리와 이마는 5㎝

    길이의 가시 면류관으로 인하여 다 찢기셨고 얼굴이 피로 물들

    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완전히 망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손과 발이 길이20㎝와 지름1㎝의 대못에 박히시고 창에 허리

    상하여 염통이 찢기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것이 바로 나의 속죄

    를 위하여 내가 죽을 그 모습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

    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거듭났을 때입니다.

이 때에는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의 의미가 깨닫고 통회자복의 회개의 눈물을 흘린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의 삶과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신 것처럼 성공이나 출세나 영화나 행복을 누리고 꿈꾸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부부로 그 형상과 품성을 따라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요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된 자가 이 땅에서 누리고 영화와 권세와 출세를 위하여 전심을 기울이는 어리석은 자가 아닌 것입니다.

여기 시작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제물이 되었던 것처럼 성도의 삶이 이와 같이 온전하여 하나님께 열납이 되는 예배와 기도와 헌신의 삶이 시작 되는 것이요 이것이 현재도 변치 않고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여 오시는 그날에 영과 육이 완전한 하나가 되어 천년왕국에 입성하여 그리스도와 영원한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치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부부가 되었기 때문에 성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거룩함과 온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격적 품성과 신의 성품에 이르는 역사가 나타나는 법입니다.

지금같이 이렇게 엉터리 없는 구원관과 거듭남으로 마치 천국백성이 된 것처럼 의인 행세를 하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큰 착각과 오류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와 하나되고 부부가 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거듭난 성도가 새벽기도를 하지 않고 가정예배도 드리지 않고 수요예배, 금요예배, 구역예배도 드리지 않고 십일조와 헌물과 감사도 온전히 드리지 않고 주일날 예배만 지킨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이들은 사단에 미혹된 자들이거나 아직 거듭나지 아니한 육적 성도인데 이 상태로는 절대로 구원이 없습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잘못된 신앙이 기복주의 축복론과 신비주의에 빠져 은사나 사모하고 기사, 이적, 표적이나 찾아 다니고 축복과 문제 해결과 병 고침과 예언자들을 찾아 다니는 신앙은 절대로 거듭난 자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직 거듭나지 않은 초보적 신앙, 그리스도 도의 초보와 믿음의 초보에 있기 때문에 이 단계를 거치고 장성한 신앙에 이르러야 비로소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와 진리가 떠나는 순간이 바로 자기에게 죽음이 오는 것이므로 이 순간을 떠나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는 진리의 말씀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좇아 고난의 십자가의 삶과 전인격적 삶을 따라 온전하고 거룩함으로 만민이 보기에도 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할 만큼 행실에서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잘못된 거듭남의 선포는 주의 종 자신이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된 구원관을 선포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제물의 최후의 모습

레1:9 <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

           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

           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

 

왜 내장을 물로 깨끗하게 씻고 불로 완전히 태워 소멸시켜야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를 기뻐 흠향하신다고 했는데 왜 고기 타는 냄새를 기뻐하셨을까?

 

(내장을 씻는다는 의미) = 이는 말씀으로 나의 속사람을 깨끗케 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엡5:26절에는 물은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고기를 불로 태우는 의미) = 육은 성경에서 옛사람을 가리키고 죄인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롬8:13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이는 바로 성령이신 그리스도의 영이 오셔서 나의 영을 지배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성령으로 거듭나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생명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불은 성령으로 육신의 죄인인 옛사람을 완전히 태우고 살라 죽여야 비로소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부부가 되는 원리가 바로 제물이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의 영적 비밀이 이 속에 깊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어 못 박히고 찢기고 각을 뜨고 철저하게 옛 사람의 죄인의 모습이 죽어져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갈2:20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

             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

             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

             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

             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영적 부부가 되고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의 증거가 곧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으심이 나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 죽고 어린양의 죽음과 같이 옆구리 찔리고 갈비뼈 상하시고 심장이 칼로 찔림으로 물과 피를 다 쏟고 가죽이 벗겨지고 내장을 꺼내 고기를 갈기갈기 찢어 각을 떠 불로 태우는 것과 같이 우리의 옛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 한 길 밖에 없습니다. 이 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으므로 나도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의 고통의 삶과 그 길을 따라 가야 비로소 내 옛 사람이 죽음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 시대가 잘못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도 죽음도 날 위하여 다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고난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고 또 거듭남을 가지고 회개가 필요 없다고 하는 잘못된 신앙과 교리가 성도들을 무섭게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고난에 동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신 고난의 삶을 따라 가는 것이 믿음이라고 갈2:20절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롬8:17 <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

             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

 

하나님의 후사, 그리스도의 후사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씨, 종자를 그대로 받아 다시 태어난 자를 말합니다. 아담의 후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후사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태어났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지신 십자가와 사신 고난의 삶을 그대로 함께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씨를 받고 다시 출생한 자가 바로 옛사람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게 되므로 예수와 영적 부부로서 한 몸이 되고 부부의 짝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로써 내가 주관하고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언어와 행실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시고 사는 영적 부부로 신부에게 나올 것은 그리스도의 사신 삶과 십자가와 고난의 행실이지 이 땅에 누릴 영화와 행복을 꾀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것이요 죄인인 내 육체의 행실을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고 지배하여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와 나의 모든 죄를 담당하여 죽으셨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우리성도가 완전히 죄인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롬6:6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못박힌 것

            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육은 죄성에 빠지게 하고 이로 인해 이미 심판 받아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에는 사단과 죄가 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고는 결코 죄의 행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절히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바로 구약의 제사에서 어린양의 고기를 각을 떠서 번제단에 올려 놓고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은 내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부활하시므로 우리가 믿는 믿음 안에서 이같은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와 출산과 사신 십자가의 고난의 삶과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시고 다시 부활하여 하늘에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 이르는 이 길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인데 이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인 것입니다.

 

번제단의 불 =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불

                     이 아닙니다.

 

레9:24 <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

              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

 

번제단의 불은 제물의 고기를 살라 소멸시키는 것인데 이 성령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령만이 옛 사람의 죄악의 삶과 육체를 온전히 죽이고 살아 그 형체가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요한복음 3장에서 거듭남을 말씀하실 때 물과 성령 없이는 거듭날 수가 없다는 것이 이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속죄와 거듭나고 자라고 장성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모든 과정은 성령이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탄생케 하시고 자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과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고 부활하게 하시고 하늘에 승천하심과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역사하신 것이 바로 성령이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후사가 되는 우리가 새 사람으로 잉태되고 출생하고 자라고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고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고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과정을 밟도록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단의 불은 하늘에서 내려온 성령에 의해서만 옛 사람의 육의 근성과 속성과 본성을 온전히 죽이고 태워 소멸시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레10:1~2 <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

                 하면서 각기 향료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

                 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다가 불이 여호

                 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

 

분향은 향단에 불을 피워 향을 피우는 것인데 성막에서의 향단은 성도의 기도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계8:3~4 <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

                여 보좌의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

                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

                는지라 >

 

성도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향을 피우는데 반드시 번제단의 불을 가지고 향을 피워야합니다.

이는 곧 성도가 기도의 향을 피우려면 성령으로 향을 피우라는 것으로 성령의 감동과 지시하심을 따라 기도해야 이것이 하나님께 열납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기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향연을 피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른 불은 성령이 아닌 거짓 영, 유혹의 영, 사단의 영으로 향연을 피웠다는 것으로 사단에 사로잡힌 기도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때 나답과 아비후가 육체적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신약에 와서 영혼의 죽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고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면 나올 것은 육체가 이 땅에 누릴 영화와 행복과 성공과 출세를 구하고 땅의 것을 원하여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내 영혼을 죽이는 기도 밖에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향단(번제단)의 불을 가져다가 분향해야 함에도 다른 불을 갖다 분향함으로 그 영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에 의해 기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레6:12~13 < 단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 

                   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은 그 위

                   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지며 >

 

왜 번제단의 불을 항상 꺼지지 않게 돌보아야 하는가?

그것도 제사장이 돌봐야 하는 것은 제사장은 신약의 구원백성(계1:6, 5:10)으로 성령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늘 제단의 역사가 끊이지 아니하도록 은혜의 불, 성령의 불을 항상 붙이라는 것입니다. 이 불이 있어야 제단에 바치는 제물을 태울 수가 있는데 제물의 고기인 육은 항상 죄와 허물과 죄악 가운데 거할 수밖에 없는 옛사람의 죄인의 본성과 속성과 근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옛사람을 태우고 죽일 수 있는 곳이 번제단입니다.

어린양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시대에 어린양이 불살라 졌다는 것은 육은 죽어 티끌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완전히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인류와 나의 죄를 속죄시킨 역사는 성령의 불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와같이 성령의 잉태로 시작하여 성령의 역사로 탄생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자라시고 능력을 행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마귀의 시험에서 이기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의 역사로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되었습니다.

번제단의 불은 이와같은 성령역사의 모형입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 어린양을 태워 소멸시킨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와 나의 죄를 지고 죽으신 것이요 2차적으로는 성도가 반드시 성령의 불에 의해 나의 옛사람이 죽어지고 태워져 반드시 소멸되어야 한다는 것이요 이를 위해서는 바로 우리 자신도 성령의 역사 없이는 절대로 이와같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곧 우리 성도의 일생과 같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성경은 이를 똑같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율법의 요구는 죄인은 다 죽는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뵈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인으로 죽으면 우리는 죄와 허물 가운데 심판과 멸망과 영원히 불못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범죄하여 얻은 대가였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1차적 출생은 아닙니다.

이것은 죽음의 길이요 저주와 재앙의 심판의 길입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야합니다. 제2의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담이 실패한 것을 회복하여 반드시 재탄생과 창조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데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시려고 우리의 죄에 대하여는 죽고 우리를 다시 창조하여 탄생시킬 새로운 출생과 창조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 죄의 제물 대속물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없이는 우리의 구원의 길은 영영히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 그리스도의 사신 본을 따라 우리를 살게 하시려고 오신 것

          입니다.

 

벧전2:21 <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

 

여기서의 은 단순히 본받는 행실의 의미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탄생하시고 자라시고 옷 두벌 없이 전대도 없이 사시고 이 땅에 아무 욕망과 탐심이 없이 오직 하나님 나라에 목적과 목표와 소망을 삼고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순종만 있었던 모든 삶의 일체를 살아야 하는 원본을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 삶과 십자가의 그 길을 반드시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8:29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

             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로) =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잉태와 탄생과 자라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시고 부활하여 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 길 따라서 구원을 완성한 자들, 다시 말해서 일란성 쌍둥이로 잉태와 태어남과 사신 삶과 십자가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들이 의인이요 거듭난 자요 천국백성인데 이들을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아시고 생명록에 미리 녹명시킨 자들로 이 선택된 백성이 이 세상에서 두 번 출생, 거듭나게 하기 위하여 샘플과 원본의 예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 하나님의 예정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인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려면 원본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미리 정하셨으니) =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영원전부터 천국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미리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하심이니라) =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첫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이 열매의 씨를 뿌리면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열매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첫째 되는 장자 맏아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의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 같은 존재로 천국인의 기준을, 표준을, 합격점을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인의 기준과 표준입니다. 이것에 더 가미하거나 빼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로 잉태하게 하고 출생하게 하고 자라게 하고 십자가에 옛사람을 철저히 못 박아 죽게 하고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게 하고 다시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는 이 구원의 모든 역사를 바로 성령(번제단의 불)이 하신다는 의미가 깊숙히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깨닫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는 이 역사야말로 요3장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제단의 불을 구약의 성막에서 어린양의 제물을 태우는 불로 단순히 여겨서는 하나님의 깊은 구원의 비밀을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번제단은 1차적 구원의 단계인 칭의 구원의 단계입니다. 여기서부터 신앙은 출발되어야합니다.

여기서 옛사람이 완전히 죽어지지 아니하면 다음의 단계인 물두멍의 단계나 성소나 지성소에 이르는 단계는 없습니다. 오직 죽임을 당하는 일 뿐입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 조금만 실수하여도 죽임을 당하거나 해임을 당했습니다. 제사장은 구원의 백성임을 계1:6절과 계5:10절에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이토록 구원의 길에서 탈락할 수 있음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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