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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의 비밀(1)
운영자 2007-05-25 추천 0 댓글 0 조회 1328

    서 론

 

이 성경 공부방을 처음 개설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목들이 떠오르고 자료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아무래도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되고 또 여기에 대한 견해가 각기 다른 선악과의 정체를 바르게 드러내지 않고서 신앙을 안다는 것은 처음에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신앙이 적중해야만 하나 하나님의 뜻이 과녁이라면 그 뜻에 적중해야 할 우리의 화살의 방향이 과녁(하나님의 뜻)에 적중치 못하는 자체가 죄입니다.

처음부터 빗나간 신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과녁에 적중치 못하니 오히려 하는 모든 행사가 신앙의 삶에서 어긋나며 빗나가니 이것이 죄 뿐이요 하나님이 목적하시고 원하시는 뜻에 적중하지 못하니 결국 죄 가운데 있다가 멸망 받을 것이 성경해석의 오류와 많은 착각 속에서 기독교 안에서도 많은 무리의 심판과 멸망이 있고 구원의 무리가 적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바르게 깨닫지 못한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선악과는 기독교인들보다 오히려 이방인들의 입술에 오르내리는 말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죄 문제를 증거할 때마다 선악과가 오르내리는 것이 죄의 시초가 선악과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죄의 시초가 될 선악과를 왜 하나님께서는 낙원인 에덴동산 중앙에 두시고 결국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게 했는가! 애초부터 선악과라는 것이 없었다면 아담과 하와가 따먹었을리가 없었을텐데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것이 아니냐? 이것이 흔히 범죄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것처럼 이방인들이 말하고 기독교 안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선악과를 만들어 두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고 있는 모습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깊은 뜻을 모르고 선악과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선악과에 대한 정체를 바르게 깨닫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인간의 창조의 목적도 천국의 비밀과 내세의 영계의 비밀도 구원의 비밀도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선악과의 비밀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가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적중시키지 못하고 죄만 더하여 잘못된 신앙 생활로 결국은 멸망에 이르는 아주 중요한 것은 이것이 깊이 다루어지지 아니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양무리 교회에서는 선악과의 비밀을 바르게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적중하여 우리의 신앙의 삶이 궁극적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진리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출발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헛된 수고가 되고 허망하고 무가치한 것에 수고하다가 멸망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선악과를 어떻게 아는 것이 옳은 것인가?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떤 목적으로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셨으며 아담이 아닌 하와가 따먹게 되었고 과연 선악과의 정체는 무엇인가? 하나하나 깊이 감추인 영적 비밀을 깨달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되고 이 뜻을 따라 살게 되는 자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 선악과는 무엇인가 }

 

창2:16~17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

                   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

                   의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

                   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

                   으리라 하시니라 >

 

이것은 천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가 살 낙원으로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하와를 창조하시기 전에 아담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왜 이 말씀을 강조하여 한계를 분명히 짓는가는 나중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와가 창조되기 이전에 아담에게 하셨다는 사실에 주목하시기바랍니다. 아주 중요한 영적 비밀임에도 오늘날 설교에서 간과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하와가 듣는 가운데 이 말씀을 주시지 않고 아담에게만 하셨을까? 그리고 왜 아담을 먼저 창조하시고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나중에 창조하셨을까? 왜 창조에서부터 이렇게 차별을 두셨을까! 왜 이것을 기록하셨을까?

이런부분들이 오늘날 강단에서 증거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만큼 선악과의 깊은 비밀을 모르고 아담과 하와의 창조의 비밀도 왜 이렇게 해야 했는지 원인도 모르니까 죄는 누구로부터 어떻게 왔는지의 경로도 모르고 분별력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의 분별력, 영의 분별력, 선과악의 분별력을 얻으라고 많은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초인 여기서부터 분별이 오지 않는데 어떻게 분별력이 오겠습니까!

 

최초로 선악과가 등장하면서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집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과일들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을 다 먹되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은 여기에 생명과도 있었고 생명과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것으로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왜 선과악을 알면 죽는 것일까?

물론 지금까지 많은 신학자와 종들이 이것을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기 때문에 그 죄로 인하여 죽음이 왔고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은 축복이요 구원이요 불순종은 심판과 멸망 뿐이다고 합니다.

100% 정답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총론입니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는 각론이라는 시행령이 있습니다. 바로 왜 선악과가 존재하게 했는가. 왜 순종과 불순종을 시험하셨는가.

왜 선악을 알면 죽는가. 어떻게 하면 다시 소생하는가. 그리고 왜 선악과가 생명과와 함께 있었는가. 왜 뱀 속에 들어간 사단이 아담이 아닌 하와를 유혹하였는가. 하와는 왜 사단의 유혹을 받으니까 선악과를 따먹고 싶은 충동을 느꼈는가! 등 우리가 알아야 할 심오한 비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강단에서 이런 것들이 증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계가 어둡고 영 분별력과 말씀의 분별력과 선악의 분별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자들은 지각을 사용하여 영의 통찰력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기쁘기게 하고 영화롭게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의 예리한 판단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오랜 관습 가운데 신비주의에서 나오는 예언이나 병 고치고 기사, 이적, 표적, 문제 해결, 기복주의의 축복론들은 영의 분별력이 아닌 이 땅의 축복론으로 사업 잘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부와 영화와 행복을 얻는 것이 최고의 복으로 기복적 땅의 축복으로 일관하고 고상하게 교양적 종교 생활을 원하는 기독 신자는 철학이나 윤리, 도덕적 관습에 젖다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비밀을 모르고 그리스도를 하나의 성인으로 보고 석가모니와 공자와 마호멧과 이방종교의 잡신이나 교주와 같은 것으로 보고 경전이나 코란이나 사서삼경이나 논어를 기독교 성경과 같은 진리이며 종교는 같고 진리는 하나라고 부르짖고 종교통합과 혼합주의의 대열에 앞장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랜 기독교 신앙이 수천년을 내려온 유럽에서 한국교회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각기 다른 종교를 한 가족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화목하고 화합하여 살아가는 것을 이상하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유럽이나 미국이나 기독교의 타락으로 일년 중 결혼식과 장례식과 부활절과 성탄절의 중요한 절기에만 교회에 가는 것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장담하고 살아가는 유럽의 잘못된 기독교인들조차 한국의 기독교 가정이 여러 종교를 가진 가족들이 화합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만 있는 것으로 아는 기독교가 여러 종교의 경전들을 다 진리로 보고 진리는 하나요 구원도 하나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의 종들이 법화경을 공부하고 화엄경, 코란, 힌두교와 라마교, 천도교, 각종 가르침이 다 진리라고 여기고 이들과 하나되어 수련회와 음악회, 주일학교, 성경학교와 각종 행사를 같이하는 이 시대가 얼마나 무서운 부패와 타락으로 무서운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까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화다, 십자가의 죽음이 헛되다,  십자가에서 죽은 이가 다른 이방신인 오시리스다, 보살이다, 붓다 예수다, 종말도 없다 재림도 없다, 각종 예수 그리스도를 말살시키고 깎아내리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평범한 성인 취급을 하니 이 죄의 심판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 참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이 복음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모르고 선악과의 비밀을 모르고 성경에 감추인 영적 비밀들을 모르니까 무엇이든지 다 진리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안에서도 구원의 길은 생명과 진리요 유일한 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로 예수 그리스도의 전 인격적 품성과 형상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신 십자가의 고난의 삶과 그 길을 그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 가는 길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 길 외에 다른 어떤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창세기에서 계시록 66권 전체의 핵심 구원론입니다.

 

 

[ 선악과는 천국백성의 시험 중 첫 문제였다. ]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교회 열심히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충성했으면 이 길 외에 다른 무슨 길이 있겠느냐고 하시겠지만 바로 여러 길이 있습니다. 지금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었습니다. 천국에는 하나님 나라가 있고 통치자인 성삼위일체의 하나님이 계신데 하나님의 백성이 없는 것입니다.

 

나라를 세우는데는 국가의 삼요소가 있습니다. 영토와 왕과 백성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 나라의 국가가 탄생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무궁히 존재하고 존속할 나라에 유독 하나님의 백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에 둘 영원한 천국 백성을 원하시고 이 천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이유가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하고 훈련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히 둘 천국백성을 선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이자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인이 채워지면 지금이라도 심판하실 아무 쓸모없는 무가치한 존재가 되기에 이 세상을 창세전부터 멸하기로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에 이 우주만물에 미련을 두고 여기서 성공과 행복과 영화를 누리고자하는 자들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땅에 관한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감추인 경륜의 비밀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천국인을 훈련시키고 양육하여 선발할 목적으로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와 보존과 궁극적 심판과 천국 백성의 기준도 다 예수 그리스도께 두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창조와 훈련도 교육도 될 수 없고 천국의 백성은 더더욱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천국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살아갈 수 없고 삶의 어떤 목적이나 목표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는 즉시 죽음과 멸망이 이르게 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 생애를 걸고 사랑하고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과 지신 십자가의 죽음의 고통과 고난의 삶을 따라가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발자국이나 길이 바로 죄요 멸망의 길입니다.

그래서 구원성도의 모든 촛점이 예수 그리스도께 맞추어져 한 순간도 시야에서 사라지면 죽는 줄 알고 주여!주여!하고 부르짖는 것이 천국백성으로서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목적되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믿고 섬기고 사랑하고 전심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사신 삶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자가 과연 "나"인가? 이를 명철하게 판단하여 보아야합니다.

예수 믿고 문제 해결받고 병 고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윤리, 도덕, 철학적 예수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나의 삶의 목표가 이 땅에서 누릴 것으로 이에 필요한 도깨비 방망이나 마스터 키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면 이는 절대로 믿음이 아니며 구원 얻지도 천국인이 되지도 못할 것입니다. 왜 말세에 천국에 들어갈 자가 그렇게 적고 버림받을 자가 많은지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지 못하여 잘못 믿었기 때문에 멸망의 길을 갈 작 많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성도들 또한 너무나 적다는 것입니다.

 

마7:21~23 <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

                   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

                   여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

                   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

                   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

                   가라 하리라 >

 

이 설명을 다 드리면 긴 시간을 요하기에 핵심적인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바로 천국인이었고 천국인은 예수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이 똑같아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고통과 환난의 삶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간 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랐던 자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 자입니다.

그런데 이 뜻을 어겨 자기 성공과 출세와 권세와 부귀영화와 자기가 주인되어 자기 중심적 삶으로 이 땅에서 누리고자 했던자들 그래서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축복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용하여 병 고치고 예수를 믿어 신학자 되고 주의 종 되고 권능과 은사를 행하고 기사 이적 표적을 나타내고 귀신도 쫓아내고 철학과 윤리 도덕적 인품으로 모든 종교를 인정하고 만인에게 추앙과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서 누렸던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말씀대로 행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와 십자가 죽음의 길과 주님의 형상과 전 인격적 삶을 살려니까 이 땅에서 고통과 환난의 십자가만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것은 오직 인본주의, 기복주의, 신비주의, 철학주의에 치우쳐 잘못된 기독론을, 구원론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논리와 합리성을 내세워 자기가 이 땅에서 추구하고 소망하고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고자 수단과 방법으로 삼았지 예수를 바르게 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에 이르는 외적 내적 그리스도와 똑같은 쌍둥이와 같이 맏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첫 열매가 되시고 그의 후사가 되는 천국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아야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부패와 타락상이 이 때문이며 주의 종들이나 성도들의 모습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이나 십자가를 지고 그 길 따라가는 그리스도 인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되 지식적으로 철학적인 예수나 외식과 의식과 형식에 치우친 신앙으로 고난의 십자가 없이 편안함과 이 땅의 영화와 행복을 누릴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많은 신자는 있지만 참된 그리스도의 형상은 찾아보기가 힘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을 바르게 깨닫고 영의 깊은 곳에서 신령한 만남과 교통이 이루어지며 영의 통찰력을 가져야할 신앙이 너무나 예수 그리스도를 잘못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선악과만 해도 그렇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두셨는가! 이 깊은 비밀을 아는 이가 심히도 적습니다. 이것을 바르게 안다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악과도 아주 깊이 알아야합니다.

 

 

{ 왜 선악과를 만드셨는가 }

 

선악과는 순종과 불순종의 시험의 나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셨으므로 불순종입니다.

그리고 이 선악과는 먹으면 죽는 과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순종과 불순종없이 무조건 순종하게 창조하시지 왜 불순종도 할 수 있도록 했느냐는 것입니다.

아담을 창조하실 때 분명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었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형상이란 무엇입니까? 인격체라는 것입니다.

영과 혼과 육이 있는 사람이요 지성, 감성, 의지가 있는 인격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짐승과 유일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에게 인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성이 있고 감성이 있고 의지가 있다는 것이 짐승과 다릅니다. 특히 여기서 자유의지란 누구의 강요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판단을 가지고 어느 편에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뜻이 정해진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려고 선택하고 결심하여 실행하는 능력, 지식, 감정과 대립되는 정신작용" 혹은 마음의 뜻에 정해진대로 동작하려는 동기의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아담과 하와에게 자기 마음의 뜻대로 정해진 동작의 결정은 선이나 악이나 자기의 마음에 정해진대로 결정하여 반드시 실행할 결정적 동작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격적 자유의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과 악이 존재하고 선이나 악이나 선택할 자유의지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왜 악을 존재하지 않도록 창조하시지 선과 악이 존재하도록 창조하셨을까?

만일 악이 없이 선만 가지고 있는 아담과 하와로 창조하여 하나님께 오직 순종만 있게 하였다면 선악과가 필요없었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에게 선이나 악이 양립하고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권리와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선인이 되고 악인이 되는 것은 자기의 의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의지없이 무조건 순종하게만 만들었다면 아담과 하와는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로봇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무 지성이나 감정이나 의지가 없는 비인격체 로봇에게 찬양과 영광을 받는다면 이것은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창조의 목적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인격적 품성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전인격적 품성을 가진 백성으로부터 찬양과 영광과 감사와 존귀를 받으시므로 영원무궁토록 존재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할 백성이 필요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전인격적 품성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했지만 이런 성품에 이르기 위해서는 아직 한 가지 훈련과 양육과 교육이 필요한 과정이 남아있었습니다.

바로 선과 악을 체험해 보고 어떤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고 영화롭게 할 영광과 찬양과 감사와 존귀를 드리는 길이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그 편에 굳건히 서서 영원히 변치 아니할 선에 대한 전인격적 의지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에 굳건히 서서 영원히 변치 아니하고 하나님을 반역하거나 배도나 배교하는 어리석고 무지한 자의 편에 서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악이라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악을 체험하지 않고서는 선이 얼마나 위대하고 가치있는 존귀한 것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악을 모르고 전쟁도 슬픔도 고난도 환난과 온역과 괴로움과 두려움고 병들고 죽음을 당해보지 않고 악에 대한 가장 혹독한 이 모든 것들을 체험해 보지 않고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과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기쁨과 감동과 감격과 행복으 고마움을 절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 때에야 비로소 이 감동과 감격과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전인격적 품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이 천국 백성으로부터 진정한 영광과 찬양과 감격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악과 고통과 죽음과 전쟁과 온역과 절망, 슬픔, 두려움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진정 전인격적 찬양과 감사와 존귀를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 말로 이런 천국백성이 아니면 하나님께서 존재하고 기쁨을 누리고 살맛이 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천국백성이 절실히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 창조한 아담과 하와는 이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왜요! 아직 이런 쓰디쓴 악의 고통과 죽음과 두려움과 전쟁의 참혹함과 슬픔, 절망, 좌절, 질병과 악의 처참한 괴로움을 당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와 존귀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기쁘시게 못했습니다.

 

 

《 천사의 타락으로 최초의 악이 등장 》

 

이 글을 읽는 성도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이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런 일을 겪게 하시려고 선악과를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오해의 소지가 없어야겠기에 또 하나의 사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악의 경험과 체험을 필연적으로 겪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먼저 천사의 배도와 반역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천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수종들고 보필할 천사와 장차 하나님의 백성들을 수종들고 사역할 천사로 하나님의 전인격적 품성과 형상대로 창조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배도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히1:14 <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

             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

 

천사의 창조 목적이 아주 또렷하게 나와있는데 구원얻을 후사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천국인입니다. 이들을 수종들고 섬길 부리는 영으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상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수종들고 보필하는 부리는 영으로 창조하셨을 때 천사 중 찬양을 하던 계명성 천사가 하나님을 배도하고 반역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14:12~15 <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

                    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

                    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

                    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

                    에 빠치우리로다 >

 

이 계명성 천사가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에서 하나님의 보좌까지 넘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최초의 배도와 반역의 사건이요 아담과 하와 창조 이전의 사건이었습니다. 이가 최초의 악이요 사단마귀였습니다.

이 천사에게도 전인격적 품성과 의지를 주었으나 결국 자유의지를 배도하는데 굳혀 최초의 악으로 마귀로 존립하게 된 것입니다. 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장이 되기까지 그를 위해 하나님 여호와께서 온갖 각별하신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배도하였습니다.

이는 뭇 천사들로부터 부러움과 높음을 받고 존경과 사랑을 너무나 받다보니까 교만하고 오만하게 되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까지 올라 그 자리를 넘보았던 것입니다. 이가 찬양 천사장이었던 증거가 겔28장에 나와있습니다.

 

겔28:13~15 <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

                     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

                     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

                     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

                     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

                     하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

                     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

                     네가 지음을 받던날로부터 네 모든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이 찬양 천사장을 창조하시고 그에게 비파와 소고와 온갖 보석으로 단장시켰다는 것은 이로부터 찬양을 받으시기 위해 하나님의 특별하시고도 각별하신 은총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그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일군의 천사들의 찬양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온 천군과 천사들로부터 칭송과 존경과 사랑을 너무 받다보니 교만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에서 이런 칭송과 찬양과 존경과 사랑을 받은 많은 종들과 성도들이 있고 종교 지도자들과 신학자와 장로와 각 직분자들이 영광을 다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지금 교회가 얼마나 위험한 수준에 있는지 모릅니다. 바로 이런 곳에 교만과 배도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 악의 유혹이 반드시 있음 】

 

이 계명성 천사가 바로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다가 최초의 악이요 사단마귀가 되어 일군의 그를 수종하던 천사들과 함께 쫓겨났습니다. 이 사건이 아담과 하와의 창조 이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이미 악이 사단마귀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사단이 뱀에게 들어가 하와를 유혹할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악이 존재하고 사단마귀가 존재하는데 필연적으로 반드시 악의 유혹을 받을 뿐 아니라 타락할 것을 이미 하나님께서 천지우주만물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아셨습니다.

 

이렇게 악이 사단마귀가 존재하고 또 미혹할 것이 작정되어 있고 어차피 반드시 악을 체험해야 이 체험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새 생명의 은총과 새로운 창조와 탄생으로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두실 천국인이 양성이 되되 악으로부터 오는 죽음이나 전쟁이나 온역이나 두려움이나 괴로움과 슬픔과 고통과 환난과 고난의 십자가 없이 이 훈련을 통과할 수도 없거니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세전부터 새 창조와 보존과 궁극적 심판으로 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무궁토록 누릴 천국백성은 이 세상 악의 소굴에서 훈련과 교육과 시련의 연단을 통해서 이 시험을 통과한 자라야 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예정과 작정해 놓으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시기가 언제이냐가 문제지 반드시 사단의 유혹과 범죄와 악 때문에 죽음의 고통을 겪고 넘어가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지으시고 동산 중앙에 두시고 어차피 필연적으로 겪을 일이었기에 천군 천사 그룹으로 화염검으로 지키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악을 체험하지 않아도 된다면 애초에 선악과를 지을 필요도 에덴동산에 두지도 않았고 또 이것을 꼭 막아야 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룹으로 화염검으로 반드시 사단의 유혹이나 이것을 먹지 못하도록 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이 죽음과 전쟁과 온역과 고통과 환난의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보지 않고서는 하나님나라의 진정한 행복과 기쁨과 감격을 모르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우리가 얼마나 사랑하고 경외하고 경배해야 할 존귀한 하나님이신 줄 끝내 알지 못할 것입니다. 악을 철저히 체험해 보았을 때에만 진정 평화와 기쁨과 행복과 영화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계명성 천사나 하나님같이 된다는 유혹에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처럼 다시는 배도와 반역하는 일이 천상에서 일어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과 평화와 즐거움과 영화만이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이런 천국인을 훈련과 양육과 시련의 불구덩이에서 시험을 받고 단련된 천국인,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감격과 감동과 행복과 기쁨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사실과 그 분이 바로 나의 신랑이요 본체요 나의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악의 체험을 통해서만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한 존재를 영원히 변치않고 찬양할 것입니다.

 

 

{ 말씀 타락의 기원 }

 

창3:5~6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

                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

                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

                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

 

창2:17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더라 >

 

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가! 선악과는 선과 악을 알게하는 실과라고 했는데 이것을 먹게 되면 눈이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죽는다고 했습니까? 사단이 유혹하기를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 같이 된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을 분류해 보면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에덴동산 중앙에 두신 것은 순종과 불순종의 시험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필연적으로 해야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신뢰, 믿음 관계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법이 있고 질서가 있어야지 이것이 없으면 무엇이든지 파멸과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특히 피조물이 창조주가 되려고 한다든지 하나님의 영역과 자리와 신분을 탐한다든지 하는 것은 곧 계명과 율법이 깨어직 사랑이 끊기고 원수가 되는 것인데 창조주 하나님과 아담과의 관계가 바로 이런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는 하나님과 인간 관계의 계약으로 이것을 어길 때에 죽음이라는 형벌이 내려지는 계약이었고 이것은 어기는 자가 받은 형벌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이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 철저히 지키시는 법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의 능력은 반드시 말씀대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것은 곧 언약이요 법이요 계명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이것이 지켜질 때에 낙원에 사는 행복과 평화와 기쁨과 하나님과의 사랑과 화목의 관계가 유지되는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말씀을, 언약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악과를 아담이 직접 따 먹은 것이 아니라 하와에 의해 먹게 되었다는 것이 죄의 원인 규명에 아주 심오한 진리를 깨달아야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상황을 보니까 하와와 뱀이 무척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로 유혹할 때 아담이 있었으면 절대로 미혹되지 않았습니다.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아담이 없었습니다.

이는 곧 뱀(사단)이 아담이 없는 틈을 노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담은 하나님께 직접 들었고 하와는 이것을 아담에게서 들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와가 지음을 받기 전에 아담에게 명령하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담이 할 모든 일을 맡기시고 이 일을 다 마치니 그때에 아담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에서 하와가 나중에 지음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천지우주만물과 아담과 하와의 창조의 순서와 질서를 바르게 깨닫는 계기가 되고 여자(하와)는 아담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합니다.

왜 이것을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가! 왜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지으시고 아담이 할 사역을 다 시키신 후에 보필자로 하와를 지으셨는가? 왜 그랬을까?

아담과 하와를 같이 빚으시고 "네폐쉬하야"의 영혼과 생기를 같이 불어 넣으시지 않고 따로 지으셔야 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과 전인격적 품성을 가지고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와를 창조하신 것은 아담의 허리를 상하여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하와를 창조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여기에서 아담은 본체요 하와는 갈비뼈 중 하나의 지체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면 여자를 깎아내리고 신분을 격하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하나님 창조의 섭리와 경륜과 뜻을 바로 알아야 성경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려는 하나님 백성의 본질을 바로 알아야 천국백성으로서 우리 성도의 본질을 바르게 알게 되고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없이 천국백성이 될 수가 없으며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우리가 신앙에 바로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져 있고 요한 계시록을 결론으로 신,구약의 완성으로 천국인이 되는 믿음의 원리와 조직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육으로, 보이는 세계의 창조를 말씀하고 있고 신약영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영의 세계의 창조를 말씀하고 있고 요한계시록육과 영의 완성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을 모형이다, 그림자다 혹은 예표로 나타내고 있고 신약을 실체로 나타내며 계시록을 모형과 실체의 완성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34:16 <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

               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

               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을 모으셨음이

               니라 >

 

이 말씀을 지금 이 시대의 주의 종들이 짝을 맞춘다고 육의 보이는 생체물리학적인 것이나 문자적으로 짝을 맞추나 실체의 짝은 육과 영의 짝이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것의 가장 중요한 육과 영의 짝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예는 온 성경의 모형과 실체의 짝을 이루는 수천, 수만가지의 성경 해석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이고도 존귀한 것이니 이것을 사도바울이 알고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엡5:32절에서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대체 지금의 말씀과 어떤 관계라는 것입니까!

 

 

<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실체이고 아담과 하와는

   모형 >

 

에베소서 5장의 특징은 남편과 아내의 부부의 원리와 관계, 지켜야 할 신앙의 율례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삼층천의 세계를 보고 각종 비밀이 수천, 수만가지인데 남편과 아내의 부부의 하나됨의 원리를 이 비밀이 크도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남편과 아내를 "내가 지금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하였습니다.

이는 남편이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요 아내가 성도(교회)를 가리키고 있다는 상징적 비유입니다.

그런데 왜 이 비밀이 그렇게 큰 것일까요? 그럼 이것이 신약이니까 구약에 모형과 그림자가 있을 것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를 지어 부부가 되고 한 몸을 이루게 한 것이 짝이 되는데 이것은 곧 아담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하와가 성도(교회)를 예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짝이 맞는다는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롬5:14 < ‥‥‥‥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니라 >

 

여기 오실 자는 예수 그리스도요 아담예표요 그림자라는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지으심은 하나의 모형이요 그림자이고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바로 그 실체라는 말입니다.

이를 알게 된 사도바울은 성경이 확연히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를 모르던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담하고 기독교인들을 잡아 감옥에 넣는데 이같이 열심인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소경이 되었을 때 다메섹의 선지자 아니니야에게 안수를 받고 눈에서 비늘이 떨어졌는데 바로 구약이 비늘에 덮여 보이지 않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구약에 감추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을 때 너무나 놀라 아라비아 광야에 들어가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감추인 모든 비밀들을 찾아 정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실은 이로써 성경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 창조의 비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인 것을 알게 되어 이 비밀이 크도다고 감격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체와 모형은 짝이 맞고 똑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교회가 창조되는 것이 바로 아담에 의해 하와가 창조되는 비밀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왜 이 짝이 맞는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창2:21~24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

                   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

                   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

                   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

                   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오 연합하여 둘

                   이 한 몸을 이룰지니라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 이 구절은 말씀안드려도 아담이 깊이 잠들었다는 것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아담의 죽음이 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형이요 그림자이니까 실체의 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깊이 잠드신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도(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없이 절대 창조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없이 천국인이 창조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자를 만드시고) =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시기 위해 허리가 상해야했습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성도)를 탄생시키기 위해 로마 병정이 찌른 창에 허리가 상하고 갈비뼈 하나가 상해야 했습니다. 이로써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죽으셨는데 이렇게 허리와 갈빗대를 상하시고 탄생시킨 것이 바로 우리 성도인 교회입니다.

아담이 본체이고 아담의 갈빗대 지체가 하나 상하여 하와라는 여자가 창조되었듯이 예수 그리스도가 본체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허리와 갈비뼈 지체가 희생되어 교회(성도)가 창조되는 짝의 모형과 실체로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입니다.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 아담이 하와의 아름다움에 반해 사랑의 고백이 최고의 찬사로 이어집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교회)의 아름다움에 반해 최고의 사랑 고백을 하시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없어서는 아니될 보필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고백이었고 죄 없을 때의 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은 또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사랑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아내인 성도는 바로 죄 없고 흠 없는 성결한 성도에게 이런 최고의 찬사요 그리스도의 사랑의 고백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 십자가의 피로 값주고 사시고 창조하신 성도가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답다는 것으로 이들을 아내로 삼아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무궁토록 행복을 누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고의 찬사로 사랑고백을 할 성도가 어떤 성도겠는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태어난 자,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새 생명으로 다시 출생한 자가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아내,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어린양의 혼인잔치 자리에 들어갈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 아담이 죽어 허리 상하고 갈빗대를 상하여 지은 자이므로 여자(하와)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취하였은즉 성도라 칭하리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허리 상하고 갈비뼈가 상하여 물과 피를 다 쏟고 지은 성도(아내)이기에 이를 교회라 칭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담과 하와를 한 몸이 되게 하고 부부가 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결혼식의 주례사로 이방인이나 교회의 목사가 이 말씀을 빠뜨리지 않고 남자와 여자는 하나지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부부란, 결혼이란 남자와 여자가 연합할 때에 하나지 둘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남자에게는 생명이라는 씨가 있고 여자에게는 새 생명을 잉태시킬 수 있는 밭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주셨는데 새 생명의 잉태와 출생을 통해 인류의 번성과 생육을 위해 부부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 중 누구하나가 없으면 새 생명의 잉태와 출생을 시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아담과 하와를 부부되게 창조하셨는데 이는 육의 생육과 번성을 위해 창조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육이요 모형이요 그림자라고 했으니 이것의 실체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남편이요 신랑이요 성도가 아내요 신부로 연합을 통해 영의 생육과 번성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로 성도가 탄생되고 영적 후손의 생육과 번성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한 부부가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인류의 생육과 번성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천국인의 생육과 번성을 만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경륜과 섭리와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가 부부의 관계를 끝까지 이루어야지 살다가 헤어지게 되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생명이 있으므로 신부인 성도가 이혼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헤어지게 되었을 때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요 본체이며 신부(성도)는 하나의 지체(갈빗대)이기에 떨어져 나오는 즉시 생명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반드시 영적 부부가 되어 한 몸이 되었을 때 성도에게 생명이 있는 것이지 본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떨어져 나오면 그 즉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모르는 주의 종들이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헤어져 떨어져 나온 성도들이 허다합니다.

그런데 왜 이것을 모를까? 이것이 영적 일이요 영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영안이 열려 보고 있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본체시오 구주시오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나의 신랑이므로 세상에 사는 목적과 목표가 무엇이고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아 예수 그리스도와 헤어지지 않도록 신앙의 삶의 푯대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부부의 삶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서 떠나는 순간이 자기에게 죽음과 파멸과 심판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이 땅의 삶에서 그 목적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먹드지 마시든지 앉으나 서나 사업하거나 직장다니거나 무엇을 하든지 전심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목적이나 목표가 왜 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향하여 있는지에 대해 누가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소용없습니다.

이것은 오직 거듭난 자에게서만 이 삶의 목적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지 거듭나지 아니한 자는 소망과 목적과 목표가 전부 이 땅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육신의 남편이 중하고 사업이 중하고 직장과 내 자식들고 부모와 금은보화와 성공과 출세와 권세와 영화와 행복이 저들이 사는 목적이 되므로 이것 때문에 생명되시고 본체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부부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이들이 역사적 종말이나 개인적 종말을 맞을 때 심판과 멸망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내가 지금 존재하는 목적과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부귀영화와 출세와 성공과 행복이 아니라 지금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하고 한 부부로 영적 삶을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지옥의 불못에 떨어질 멸망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부요 아내요 여자인 하와가 어떻게 사단의 유혹을 받아 범죄하고 죄악으로 멸망과 심판의 죽음으로 몰락하는가! 이것을 구약의 모형에서 보자는 것입니다.

 

 

 [ 사단이 최초로 등장 ]

 

창3:1 <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

            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

            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

            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 아담과 하와 창조 이전에 이미 계명성 천사의 배도가 있었습니다. 이가 사단마귀의 원조요 최초의 악입니다.

지금 악한 사단의 접근이 하와에게 시도되는데 왜 아담이 아니고 하와에게인가! 이는 죄를 성도가 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고 했습니다. 원 생명이나 씨 자체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성결하고 거룩한 생명이요 씨인데 문제는 지체인 하와입니다.

본체인 아담과 부부이므로 모든 일에 항상 같이 있어야 하고 같이 일하고 어디든 동행해야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주인이요 중심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아담의 뜻대로 해야합니다.

아담이 내 주인이고 중심이요 본체요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와가 뱀의 사단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뱀이 접근해 왔다는 것은 아담을 본체로, 주인으로, 중심으로 모시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본체로 주인으로 중심에 모시고 있는 성도는 사단이 절대로 미혹하려고 접근하지 못합니다. 설령 미혹하려 해도 넘어가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주관자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미혹되지 않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막아주시고 붙잡아 주시고 강하게 주관하여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주인이 되고 중심이 되고 내가 주관자가 되어 판단하고 내 생각과 뜻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귀신같이 알고 접근하는 것이 영물인 사단마귀입니다.

하와가 범죄의 유혹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부부가 되어 주인되시고 중심이 되고 주관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끌림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사단마귀가 틈탔다는 것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 내게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하와에게 지금 아담이 없었습니다. 아담이 있었으면 아담이 주관하여 이끌어 가기 때문에 유혹하지 못할 것을 알므로 아담과 동행하고 부부로 붙어 있을 때 접근하지 못하다 어느날인가 하와가 아담과 같이 있지 않고 무엇이든지 자기 중심과 자기가 주인되어 자기 뜻대로 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로 사단은 이 틈을 노렸습니다. 지금 하와에게 접근하여 물었다는 것은 성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때입니다.

성도가 교회에 나오게 되면 성령이 무조건 임재하십니다. 교회에 나왔을 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의 낙원의 삶을 누리듯 신령한 체험과 기사와 이적과 참 평화와 기쁨과 행복을 맛 보고 축복을 맛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부부가 되어 거듭나고 천국인으로서 훈련과 교육과 양육을 받고 완전한 천국인으로서 자격을 획득했을 때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백성을 삼으시려고 이와같이 무조건적이고도 불가항력적 은혜와 구원과 믿음을 어떤 공로나 조건없이 구원 얻을 수 있는 축복과 은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교회에 나왔을 때 은사와 은혜를 체험하고 축복과 기적을 체험하고 문제도 해결 받고 병도 고치고 사업도 직장도 승진하고 모든 것이 만사형통한 은혜를 입습니다.

이때 감동과 감격 속에 서원도 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결심도 하고 결단도합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그날이나 내 개인의 종말까지 꾸준히 믿음을 이루어가고 끝까지 견디는 자가 거의 없습니다.

교회다니다가 환난이 오고 고통이 오고 병들고 사업이 기울어지고 어려움이 닥칠 때 결국 교회를 떠나가고 또 교회에 남아 있다 할지라도 붙들고 같이 동행하던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고 주의 율례와 법도와 계명고 율법대로 복음대로 살기 힘드니까 이것을 자꾸 피하려합니다.

이럴 때 예수 그리스도되신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이 소멸되거나 유산되거나 낙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성령이 잉태되어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드디어 만삭과 함께 새롭게 다시 출생하는 거듭남을 맛보게 되는데 이런 거듭나기까지 과정이 사람마다 다르고 또 혹독한 고난과 십자가의 고통과 환난이 있기에 이 길들을 피하려 하는 것이 많은 성도들의 심리입니다.

그래서 자꾸 성령을 거스리고 훼방하고 모독하게됩니다.

바로 이런 상태가 사단의 미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은 하와의 영적 상태와 똑같은 것입니다. 이 땅의 것을 소망 삼고 누리고 영화와 행복과 성공을 바라보고 추구할 때에 성령은 소멸되고 유산되고 낙태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 일이기 때문에 성도들이 영안이 열려 이것을 보고 있지 않는 한 이 감각을 깨닫지 못하므로 죄악과 허물에 빠져 사단의 미혹을 받는 것입니다.

원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님이 지금 하와에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단의 유혹을 받더니 여지없이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와의 영적 상태가 지금 뱀에게 미혹받는 이런 상태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한 부부로서 행복과 기쁨을 감사하지도, 낙원의 삶을 기뻐하지도,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못하는 상태이므로 사단의 유혹을 받게 된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 없는 삶이 낙원의 상실 >

왜 하와가 이런 유혹을 받느냐! 하나님의 은혜를 몰랐습니다.

에덴동산의 낙원의 삶을 주신 것,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아담으로 인해 지음을 받고 낙원에서 행복과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인 사단과 친해지게 되었고 유혹을 받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이 사단(뱀)이 자신에게와 아담에게 갖다 줄 죽음과 심판과 멸망과 전쟁과 온역과 슬픔과 저주로 하나님과 원수되고 파멸이 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와가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주요 예수 그리스도되신 자기 신랑의 존귀함과 본체와 주인되시고 중심이요 생명되시므로 전 생애를 걸고 아담과 떨어지 아니했으면 이런 파멸이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덴동산 낙원의 삶과 행복과 기쁨과 평화를 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를 몰랐기 때문에 사단의 뱀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고 하나님이 없고 낙원이 없는 이 고통과 악의 삶이 어떤 것인가를 체험해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중히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이 거듭남의 두번 출생을 거쳐야 완전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와가 사단의 유혹을 받는 것을 아시고도 묵인하시고 잠잠히 계셨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던 것입니다.

사단에게 미혹을 당해보지 않고 사단이 장악한 죄악된 세상과 전쟁과 온역과 온갖 고통과 환난의 삶의 악을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완전하고 거룩한 천국인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백성이 아니라서 그 영혼을 능히 죽일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므로 이들을 폐하고 다시 제2의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들은 사단의 미혹을 받지 않고 범죄하지 않을 것인가? 마찬가지입니다. 10번, 100번을 다시 창조해도 사단마귀에게 유혹을 받지 않고는, 죽음과 파멸과 전쟁과 온역과 괴로움과 환난의 풀무 불에서 이것을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언젠가는 반드시 배도하고 반역한 계명성의 천사나 아담과 하와의 배도사건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단의 미혹을 받는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로, 화염검으로 지키시고 막아주지 않으신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막아주시고 유리정원의 화초처럼 보호만 하시고 악을 모르고 선하게만 살게하시고 후손도 선하게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다면 감성과 지성과 의지가 없는 인간 로봇에 불과하여 하나님의 은혜도 모르고 감동과 감격과 기쁨도 감사도 모르는 백성이 드리는 찬송과 감사와 영광이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겠습니까!

이는 다시 말해서 선만 아는 백성이 온전한 백성이 아니요 악만 아는 백성이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선과 악을 체험하고 이 훈련과 교육과 양육을 선과 악이 충만한 이 세상에서 경험하고 시련과 연단을 받아본 자가 천국백성이 되게 하는 제2의 아담, 제2의 출생으로 거듭나게 하여 새 새명으로 탄생케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감격스럽게 나의 구주로, 본체로, 나의 중심으로, 나의 생명으로, 나의 영원하신 신랑으로 맞이하고 영접하여 동행하게 됩니다.

이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참 진리와 생명을 맛보기 때문에 이 땅의 어떤 부귀영화와 행복과 금은보화와 성공과 출세로 유혹할지라도 다시는 유혹 당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어린양의 혼인잔치 자리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의 목적과 목표로 삼는 삶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백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존속할 나라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나라에서 계명성 천사같은 아담과 하와같은 배도와 배교와 반역하는 자가 다시 나타난다고 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시려고 이 땅에서 선과 악으로 철저하게 고통과 죽음의 십자가와 온갖 저주와 슬픔과 전쟁과 온역의 죄악된 세상에서 철저하게 훈련되어진 자로 하나님을 배반하지 아니할 자로 선발하고 뽑아내려고 이런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런 천국인을 교육과 훈련과 양육할 처소가 교회 이외의 다른 어떤 곳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교육과 훈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거듭나고 훈련된 자라야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에서는 절대로 천국인이 양육되고 출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서 천국인을 뽑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다 천국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 삶과 형상과 전 인격적 품성으로 십자가를 지고 따라간 자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태어난 자들입니다. 교회에 분명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아무나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각별하시고도 특별하신 은총과 긍휼을 입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청함을 받았다고 다 선택된 구원의 백성이 아닙니다. 이것은 후반부에서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이것이 사단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2:6~7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

                사대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많은 과실들을 다 임의로 먹을 수 있다고 했고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와에게 미혹하는 사단을 보십시오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아담이 없는 하와는 뱀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사단마귀가 이끄는대로 꼼짝없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100% 사단의 작전에 말려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가 없을 때에 이와같은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을 때 하와가 음녀가 됨

 

창3:2 <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나무의 실과를 우리

            가 먹을 수 있으나 >

 

하와는 에덴동산이 어떤 곳인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에덴은 낙원이요 하나님이 계신 신령한 교회요 천국의 모형으로 이렇게 미혹할 때 단호히 거절했어야합니다.

사단이 묻는대로 일일이 답변하고 있다는 것은 사단의 미혹에 말려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 금식하고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와 이 선악과의 시험이 영적으로 똑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이미 마귀의 말이기 때문에 귀담아 들을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답변하는 것도 개인적인 뜻이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러나 하와는 사단의 말에 일일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답변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과 사뭇다릅니다. 이것이 사단에게 미혹되고 말려들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창3:3 <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

            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

            가 죽을까 하노라 하였느니라 >

 

이때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지도 빼지도 말라는 말씀을 어기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했으므로 다른 말이 필요하지 아니했습니다.

먹으면 반드시 죽고 만다는 것인데 만지거나 먹거나 다른 말이 필요 없음에도 횡설수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있다면 한마디로 단호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로 아무리 강한 사단마귀라도 꼼짝못합니다.

그런데 사단이 더 기고만장인 것은 지금 하와에게 아담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대로 답변했으면 꼼짝 못하고 물러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도 영물이기 때문에 아담이 없는 줄 알고 접근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와가 결정적인 것은 "정녕 죽으리라""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가리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주의 종이나 성도나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변질시키며 횡설수설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흑백 논리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꼭 회색지대에 있어 흰 것도 아니고 검은 것도 아닌 중간 지점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전하지 못하는 교회와 주의 종들에게 붙어 사단은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는 것은 진리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주의 종은 하나님 진리의 말씀이 있느냐 없느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확실한 영의 분별력이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더욱 기세등등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부인하기에 이릅니다.

 

창3:4 <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 >

 

아담이 없는 하와를 얼마나 노렸는데, 아담이 없는 하와는 사단의 노리개 감밖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뒤집어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더욱 단수를 높여

 

〔 말씀의 비 진리화 〕

창3:5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

           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

           심이니라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 사단은 선악과를 먹게 될 때에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 사람의 눈이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사단이 말하고 있는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악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낙원 이외의 세상에 대한 것은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을 알고 넘치는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 속에 낙원의 삶에 대한 눈은 밝으나 어둔 세상, 악의 세상, 죄악된 세상에 대해서는 캄캄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원수되고 하나님과 낙원을 잃었을 때의 이 죄악된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눈이 밝아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내세의 비밀이나 영계를 몰라도 자신들 나름대로 이 땅에 문화와 과학과 예술과 경제, 군사로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악의 눈과 지혜와 지식이 밝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종말의 심판 때까지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천국과 내세의 비밀을 모르고도 이 땅에 낙원을 건설한다는 명목하에 이 땅에 대한 허상과 무가치하고 허망하고 헛된 것에 전 생애를 다 바치고 살아도 자신의 무지와 헛된 삶의 깨달음이 없는 소경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과 죄악된 것을 보는 눈은 밝아진 대신 영의 세계 창조주 하나님과 심판 주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는 그분에게서 왔으며 그 나라의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신바 되었고 훈련과 양육과 교육과 시험의 연단의 과정의 삶을 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채 영안이 닫혀 버린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정반대의 삶을 사는 저주가 임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② 하나님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같이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있는 자같이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주인이 되고 중심이 되어 판단하고 결정하여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계명성 천사가 하나님의 자리를 넘본 그대로 자신이 이 일을 도모하다가 하나님과 원수되고 스스로 악의 괴수가 된 것처럼 하와도 이렇게 미혹하게 했습니다.

 

사14:14 <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

               기리라 하도다 >

 

이 사단이 최초의 반역자요 불법자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위치에 서겠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이방인은 하나님 없이 당연히 자기 마음대로 한다고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맞지 않는 언어행실이나 사업이나 직장이나 취미생활이나 장사를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에 비추어보지도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자기 원하는대로 목적과 목표를 세우고 소망 삼아 부르짖고 이것이 성취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불법으로 성취해 놓고 하나님께 응답 받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다고 하는 일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들을 보았습니다.

이 증거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의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절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가 주인이 되고 자기 중심적으로 행하지 아니합니다. 이것이 다른 것입니다.

 

오늘 하와가 적어도 아담이 자기 주인이요 본체요 자기 신랑으로 주체가 자기가 아니라 모든 것이 아담에게 있고 결정을 내리고 주관하며 자기는 지체로서 아무 권한이 없는 것을 알았다면 미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지 아니하였거니와 사단이 물었을 때 나는 모르니 아담에게 물어보라고 단호히 거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존재하고 악이 존재하는 한 자기가 주인이 되고 중심이 되고 자기 생각과 뜻대로 하고싶은 충동은 끊임없이 유혹을 받게 되어있고 시기가 빠르고 늦은 차이 일 뿐이지 언젠가 반드시 유혹을 받아 범죄하게 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성과 감성과 의지가 있는 인격적 존재와 선과 악이 잠재해 있고 선택할 자유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와가 악을 체험해 보지 못했을 뿐 반드시 체험해 볼 수밖에 없는 인격체이지 성으로 고정시킨 인간 로봇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선악과를 두신 목적 》

계명성 천사가 하나님을 찬양할 사역에서 천군천사들로부터 사랑과 존경과 예우와 부러움을 사게 되자 천사에게 있는 인격체로 잠재해 있는 악의 유혹을 받고 하나님의 자리까지 넘보았듯이 아담과 하와에게도 이런 유혹은 받게 되어있고 언젠가는 반드시 악의 유혹으로 범죄하고 하나님과 원수되고 하나님과 끊겨진 상황에서 오는 전쟁과 두려움과 온역과 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지옥 불못의 고통 속에 저주 받아야 함을 알면서도 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보시는 전지전능성을 가지셨는데 아담과 하와와 천사들을 창조하실 때 선과 악을 가지고 있는 존재, 그리고 반드시 악을 체험하여 죽음과 전쟁과 온역과 고통의 괴로움을 당해 보았을 때에 자신들에게 진정 평화와 행복과 기쁨과 영화를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그리고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존재와 전능성, 사랑, 은혜를 체험한 자가 우리에게 독생자 성자 예수를 희생의 제물을 삼으시기까지 우리를 위해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동과 감격과 감복한 자라야 비로소 하나님을 영원히 배반하지 아니할 존재로 이 훈련과 양육을 위하여 필연적으로 이 고난을 받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반드시 필요했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에덴동산의 중앙에 두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목적이 천국 백성이므로 이 땅에서 악의 체험과 고통과 고난의 풀무불에 들어가 불순물이 분리되고 빠져 버린 정금이 더욱 찬란한 황금이 되듯 아담과 하와와 그의 후손들의 모든 인류는 반드시 이런 고난의 과정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과 양육과 교육을 받는 시험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우주 만물과 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목적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와 이 세상은 인류의 평화와 행복과 기쁨과 영화를 이 땅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천국인을 훈련시키기 위한 풀무불의 단련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 인간이 어디서 왔고 왜 이 땅에 존재하며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는지 뚜렷한 진리가 드러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가 이 땅에서 행복하고 성공하고 출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는 천국인의 훈련과 교육과 시험장이었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이 뚜렷함을 못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훈련과 시험의 과정에서 부자로, 출세로, 영화로, 행복으로, 권세로, 금은 보화로 여러 가지 시험을 하셨습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천국인으로 훈련과 시험을 위해 주신 것이요 이 땅에서 받아 누리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천국인의 시험의 합격 여부를 판단하시기 위해 주신 것인데 이렇게 여기지 아니하고 이 땅에서 안주하고 영화를 누리기 위해 창고를 짓고 쌓아 놓고 자기와 자기 자손의 영화를 위해 녹이 슬도록 쓰지 아니하였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먹고 마시고 춤추고 북치고 장구치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외국여행이다, 관광이다 하여 호화스럽게 연락하였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의 큰 음녀가 비단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과 온갖 금은 보화와 진귀한 상품들로 영화를 누리다가 멸망을 받는 큰 바벨성이 바로 이와 같은 잘못된 성도들의 멸망의 처참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이것은 자기가 주인이 되고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이며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기독교인들 가운데서도 심히 적습니다.

성경 66권의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신약의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말씀하신 4복음서나 사도바울의 교리와 신학과 신앙의 서신서나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나같이 핵심적인 것이 있는데 이 땅에 소망을 두거나 뿌리를 내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천국인의 양육과 훈련장이기 때문에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안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음과 심판과 멸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 》

하나님의 목적은 이 땅에서 훈련되고 풀무불 같은 시련의 시험과 단련장에서 헤어나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목적이었음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무궁토록 누릴 영화와 천국인이 되기 위해 이 땅에서의 삶을 초개같이 여겨 이 땅에 미련 두지 않고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 삶과 십자가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으로 만들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었고 천국인의 원본과 모델을 삼아 그 본을 보이게 하시려고 했다고 롬8:29에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8:29 <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

              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이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뚜렷한 핵심적인 구절입니다. 필연적으로 이 땅에서 악을 체험하고 고통과 죽음의 시련의 환난을 겪은 자가 이 시험과 훈련을 잘 받아 반드시 승리하고 천국인이 될 자가 있었으니 이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 십자가의 삶과 고난의 이 길을 반드시 따라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만세 전의 목적과 계획과 섭리와 경륜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국인의 새 탄생과 교육과 훈련과 양육을 목적으로 하여 두 번의 출생 거듭남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천국인의 창조와 통치 보존과 이 땅의 심판주로 예정하셨다고 엡3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는 천국에 영원히 두시고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려고 천국인을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있어야 할 한 과정이었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고 거듭난 자라야 천국인이 된다는 것에서 오직 기독교에만 유일하게 구원이 있는데 그것도 아무나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쌍둥이 같은 후사들이 구원 얻는 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천국인으로서 온전하고 완전한 존재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존재는 천국에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무궁토록 배도와 배교와 반역이라는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나서는 아니되는 곳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 땅에 거하는 아담과 하와는 불완전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불완전하게 창조했다는 말이냐! 이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완전하게 창조했으나 선과 악을 체험해 보지 못한 존재로서 완전한 것이지 선과 악을 체험하고도 완전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체험하고도 완전하게 된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인의 첫 열매가 된 것이요 맏아들이 된 것입니다. 선과 악을 이기고 탄생한 완전하고도 온전한 천국인으로 첫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후사가 된 우리가 구원의 열매를 맺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국인을 출생시키고 양육과 교육과 훈련을 받게 하시고 이의 맏아들인 첫 열매로 만세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첫 출생의 육의 과정에서는 완전했으나 선악과의 시험에서는 낙오된 자였습니다.

그러나 육의 생육과 번성에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적이고도 필연적 과정이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는 영의 과정을 거치고 이로써 영의 생육과 번성의 충만한 수가 바로 천국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지금 이 시대의 기독교에 제일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반드시 영의 과정으로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 이것이 천국인이요 하나님의 목적인데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고 훈련시키려고 주신 성공이나 출세나 권세, 부귀영화와 행복을 이 땅에서 다 누렸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천국인으로서의 자격 상실과 시험과 훈련에서 불합격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 상태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런 영적 상태로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를 모르니까 부자만 되면 교만하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권세와 행복을 누리므로 다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가 이러하였고 특히 말세 지말을 사는 이 시대의 교회상을 잘 묘사한 종말의 라오디게아 교회가 불행히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 교회로 계3장에 나와 있는데 지금 이 상태의 교회와 종들과 성도들로서 구원의 여망이 보이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애통하고 탄식하고 방성대곡할 자라야 온전한 회개와 진리의 깨달음을 통해서 다시 거듭날 수 있는 좁은 길, 십자가의 협착한 길로 스스로 들어가 훈련과 양육을 받을 수 있는데 지금 교회의 모습은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내게 부족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영적 부자와 부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만족하고 기쁨으로 충만하고 거듭난 자라야 하는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누리는 영화와 행복으로 만족한다고 하니 어떻게 이들이 천국에 갈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교회가 자신들은 의롭고 거듭나고 천국을 상속 받은 자로 여기고 있는 큰 오류와 착각 속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개와 애통과 탄식이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의 길, 고난과 죽음의 환난의 길을 절대로 가지 아니하면서 구원을 장담하고 있는데 기가막힐 일인 것입니다.

 

【 거듭나지 아니한 자가 교회의 주인이 됨 】

라오디게아는 "라오스"와 "딕토스"의 합성어인데 "라오스"'민중(성도)'을 가리키고 "딕토스"'비위를 맞추다' "성도의 비위를 맞추는 교회"입니다.

민주주의 교회로 성도의, 성도에 의한, 성도를 위한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이름이 왜 라오디게아 인지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마지막 종말 때 나타난 최고의 인본주의 교회입니다. 신본주의로 하나님이 주인이고 중심이 되어야 할 교회가 성도가 주인이고 중심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를 예수께서 떠나시고 오히려 문밖에 쫓겨나 계신 상황이 계3:2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하고 있는 멸망받을 불행한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책망만 있는 교회로 믿음이 없고 흰옷이 없었는데 어린양의 신부로서 반드시 입어야 할 세마포입니다.

영안이 열려서 영의 통찰력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데 말씀의 분별력, 영의 분별력, 선과 악의 분별력이 없는 이 시대 종말의 교회로 책망을 받는 교회입니다.

구원 백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세가지 조건이 있는데 어느 것 한 가지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는 증거요 거듭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헌물 드리고 기도하고 예배 드리고 귀신도 쫓아내고 권능도 행하고 종교 지도자도 신학자도 선지자도 주의 종도 장로, 권사도 다 되었는데 무슨 소리하는 것이냐! 하시겠지만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었는데 멸망을 받는다? 예수를 믿되 잘못 믿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이 시대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문제 해결받고 병 고치고 기사와 이적 일어나고 귀신을 쫓아내는 신비주의와 축복론으로 사업 잘되고 자식 잘되고 직장 승진하고 이 땅에서 성공하고 출세와 권세와 영화와 행복을 누리는 기복주의와 지성인이고 학문이 깊고 대통령이고 높은 지위와 인격자라는 칭호를 들으며 윤리나 도덕적 철학적 예수를 믿는 인본 철학주의는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오로지 자기가 이 땅에서 목적하는 바를 성취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목적의 수단과 방법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기독교에서 묵시될 수 없는 기사와 이적과 표적이 일어나는 축복들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인으로 훈련받고 교육과 시험을 받고 있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수적인 수단과 방법이지 이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 대부분이 이 부수적인 과정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목적을 삼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이것은 어떤 현상을 낳고 있는가!

주의 종이나 성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격적 품성이나 형상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형식과 외식과 의식에 치우친 신앙으로 이방인들에게서 외면 당하고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화려함과 웅장하고 장엄한 교회의 외모는 있으나 내적 경건의 능력이나 거룩함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없으니까 자랑할 것은 자기 교회 자랑이요 목사 자랑이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라고 자랑이요 성도의 수가 많은 것이 자랑이요 시설이 잘되고 주차장이 제일 크고 축제와 행사와 절기가 광대하게 치러 지고 즐겁고 재미있고 축제와 음악회와 행복 세미나로 자기 모습, 자기 자랑, 자기 욕망만 드러내고 이방인들에게만 있었던 외모 지상주의가 이제는 기독교 안에 들어와 외모의 화려함에 서로의 칭찬과 존경이 최고의 신앙인 것처럼 간증이다, 박사학위다, 종교 지도자다 하여 학위와 명예와 모든 것이 이 땅에서 누리는 것으로 영광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명목하에 실상은 자기가 영광을 다 받아 가로채고 있는 것이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자기가 하는 모든 일들이 잘 되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출세하고 성공하고 권세와 명예와 부와 영화를 누려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목적 달성을 위해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고 기도회, 충성, 봉사도 빠지고 헌금을 제대로 못 드려도 내가 잘 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로 다 죄사함을 얻고 그때 가서 큰 영광을 드린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까?

이런 죄를 범하고 잘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 드리고 더 신앙이 돈독해 지는 사람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자기가 천국인으로서 자격의 훈련과 양육과 시험을 받고 있다면 두렵고 떨림으로 이 구원을 위해 목숨을 다하고 성품과 물질과 시간과 몸과 영혼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온전히 드려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 십자가의 고난의 삶과 길을 지금도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이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성도가 지금 갑작스런 개인의 종말이 올지라도 구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자가 과거에 거듭났기 때문에,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현재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가신 십자가의 길과 고난과 환난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 가고 이런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오실 때에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성도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구원의 시제라는 것인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원의 시제가 삼위일체 되어야 구원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십자가의 고난의 삶과 고통과 환난의 이 길을 가지 않고 예수를 믿어도 기복주의, 신비주의, 인본주의, 철학주의로 믿는 것은 절대로 구원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처음부터 믿음의 초보단계나 신앙의 초보, 그리스도의 초보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종말 이 시대에도 이것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얼마나 비극적 종말을 초래할 것인가가 명확한 일입니다.

선악과는 반드시 필요했고 구원의 과정에 있어 선과 악을 체험해보지 못한 자가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을 드린다는 것은 헛되고 무가치하고 허망할 뿐이며 이런 자들이 하나님께는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온 목적은 바로 선과 악의 체험을 통해 하나님만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천국만이 섬길 대상과 행복과 축복과 기쁨과 평화가 오직 여기에만 있다는 것을 안 인격체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천국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선악과를 가지고 각가지 이상하게 해석하고 구원론을 각양각색으로 증거하고 있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것은 이 핵심적인 사실 조차도 모르는 종들이나 교회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선악과의 비밀을 성으로 푸는 자가 없나, 선악과가 사과나무다, 천도 복숭아다 하고 쟁론을 벌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무지한 현상인지 바르게 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영안이 열리지 아니합니다.

 

(너희의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된다) = 이 말은 하와를 엉뚱하게도 악의 눈과 하나님 같이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영안이 닫히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영계와 진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말씀과 교회와 주의 종의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에 목적과 소망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한다면 영안이 밝아질 수 있으나 세상의 눈의 밝음으로 이 세상에서 누릴 지혜를 구하고 땅의 것을 사모하는 것은 범죄한 하와의 모습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 과정은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이요 이 과정에서 반드시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이를 성취시켜 주시고 일방적이고 전적이고 무조건적이고 불가항력적 은혜로 나에게 구원의 믿음과 은혜와 선물을 아무 공로와 조건없이 주실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요 본체요 신랑이요 나의 생명이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멸망의 늪과 사단의 착고에 매여 영 죽을 인생이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려고 오셔서 구원의 첫 열매가 되셔서 통과하시고 완성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생애의 목적과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결단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영적 부부가 될 수 없습니다. 이 길만이 유일한 길이므로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세상 줄을 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왜 선악과가 에덴 동산에 있어야 했고 선악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성취하시려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로 인하여 이 땅에서 선과 악을 충만하게 체험케 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영원히 둘 하나님의 백성들의 인격과 품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과 형상인 전인격적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 회복과 거룩함을 원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천국인이 목적이지 이 땅의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백성이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나타내려는 목적이 있다면 이 땅에서 성도가 잘 살아야 하고 성공하고 출세하고 축복과 권세와 행복해야 하나님의 축복의 증거요 사랑의 증거요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전심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땅에 소망과 목적을 두고 산다고 해도 죄가 될 수 없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기독교 인들에게 이 모든 것을 마땅히 주셔야 할 의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가 낙원이요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 인들에게만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하면 악이 존재할 필요성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또 여기가 천국이요 죽어서 내세에도 천국이라면 선악과가 필요치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과 내세에서도 천국의 삶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눅16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에서 부자가 음부에 간 이유가 확실하게 나오는데 이 땅에서 받아 누렸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부요와 연락과 편안과 영화를 누렸다는 것은 천국인으로서의 훈련과 양육과 풀무불의 연단의 시험의 과정을 통과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 관리에게 예수께서 "가지고 있는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이 땅에서 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이 길이 유일하게 구원 얻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라 자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선악과의 의미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우리에게 반드시 죽음이 와야 한다는 것이요, 선과 악을 반드시 체험해야 한다는 의미로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전에는 선악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게 되었을 때에는 선악과를 먹은 자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다시 출생해야 하는지를 알고 거듭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인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시고 가난하게 자라나시고 이 땅에서 성공이나 출세나 영화나 행복의 삶을 누리려고 여기에 목적과 목표를 두고 소망을 삼지 아니하고 옷 두벌과 전대를 가지지 아니하고 결국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고 무덤에 들어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까지 가신 이 길이 바로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학문이 다르고 신분도, 지위도, 사업도, 직장도 다르고 모두가 다른데 어떻게 이 길을 가야한다는 것인가! 이것이 곧 성도와 이방인이 확연히 다른점인데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삶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신 삶은 모든 예배와 기도회와 충성과 봉사와 헌신의 삶으로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 삶이 십자가의 수직적 신앙이요 이것이 바르게 선행되지 아니하고 믿음이다 거듭남이다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성막과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본업이었습니다. 계1:6절과 계5:10절에서 제사장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곧 천국인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본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천국 백성은 제사와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예배와 기도회와 하나님의 일이 이 땅에서 본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최초의 본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이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하나님 나라에 뿌리를 내린 천국백성이 이 땅에서 해야 될 일입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고 다른 어떤 일을 해도 천국백성이 아닙니다. 이것을 지키지 않고는 천국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내려 천국 양식과 생명수를 공급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 거듭난 자요 타락이나 부패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 오는 성공이나 출세나 영화와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당하는 여러가지 불이익과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가 바로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 땅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벗어 버리고 옛 사람이 죽는다거나 거듭나는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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