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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의 비밀(2)
운영자 2007-05-25 추천 0 댓글 0 조회 819

《 십자가의 도 》

지금 대부분의 성도들이 이것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업이다 직장이다 바쁘다 여러 핑계를 대고 변명하고 합리화시킬지라도 이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믿음은 먼저 모든 예배와 기도회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요 목표요 이것이 자신의 본업이 되지 않고는 천국백성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구원 성도의 천국인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실체인 천국인과 모든 형상이나 모양에 있어 똑같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인의 참 본을 보여 주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예배와 기도회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나도 빠뜨린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 삶과 십자가의 이 길을 반드시 따라 가야 한다는 것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 삶을 이탈하고 어떤 핑계와 합리성을 말해도 이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났다고 자처하고 자신이 천국인이라 자처하면서 예배와 기도회를 지키지 않고 아무리 헌금 많이 하고 충성한 공로를 들추면서 구원을 확신하다 할지라도 신앙의 원초적 뿌리가 없는데 어떻게 신앙의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예배와 기도회와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천국에서도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을 경외하여 드리는 섬김과 경배입니다. 천국인의 가장 기초적이고도 기본적인 것이 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천국인이 된다는 것입니까!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본이 되어 주시고 철저히 지켰다는데서 이것은 변명하거나 합리화 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천국인에게 있어 이 신앙의 토대가 되어야 십자가도 완성하고 이 고난의 바탕 가운데 구원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길을 가기가 힘드니까 대부분의 종들이나 성도들이 자꾸 이웃에게 눈을 돌리는데 물론 이것은 십자가를 완성하는데 수평적 관계로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수직적 하나님과의 화목 관계가 바로 서지 못한 상태에서의 수평은 십자가를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시고 가신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파괴되었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완성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고 그러므로 구원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이 없이 어떻게 부활이 있겠습니까? 부활은 죽었을 때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옛 사람의 죄인의 죽음 없이 부활이라는 거듭남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거듭남이란 '두번의 출생, 새 생명의 출생,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의 부활'인데 예배와 기도회와 하나님의 일을 하지도 지키지도 못하는 자에게 거듭남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순간적이라는 시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화는 점진적이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요 영화는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구원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과거의 칭의, 의롭다 하심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인데 이것은 아무에게나 붙여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으로 거듭난 자에게 붙여지는 칭의입니다.

 

그러므로 과거구원의 칭의 없이 현재구원의 성화 있을 수 없고 지금 이렇게 성화되고 있는 자라야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이들을 천국의 하나님 나라에 영원한 백성을 삼으시려고 의인을 데리러 오시는 것으로 초림은 분명히 죄인을 구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은 죄인에서 완전히 새 사람으로 거듭난 의인을 구원하시는 것이 재림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원의 시제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삼위일체 되어야 하는 것이 구원의 완성임을 볼 때 거듭남 자체가 오랜 고통의 기간과 훈련과 시련의 연단의 기간을 통해서만 되는 일이기에 거듭남을 이 시대가 아주 간단하게 이룰 수 있는 것으로 착각과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옛 사람을 반드시 죽여야 부활 하듯이 옛 사람의 죽음이 없이 거듭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곧 거듭남으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가신 그 길을 따라 가게 되고 십자가를 지고 사신 삶을 따라 그 행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인인 것입니다.

 

{ 선악과의 정체 }

창3:6 <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

            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하고) = 선악과를 오늘 처음 본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선악과 뿐 아니라 생명과도 날마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생명과는 먹어도 좋다는 허락이 있었는데도 먹지 않았고 선악과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먹지 말라고 하여 못 먹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같이 이렇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인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이것을 먹으면 죽지도 않고 하나님 같이 되고 눈이 밝아진다는 사단의 유혹을 받고 선악과를 보았더니 그렇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와는 매일 보다시피하는 선악과에서 이런 유혹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만가지 과실이 얼마든지 있고 또 맛있게 먹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과는 관심도 없었고 선악과도 관심이 없었는데 사단에게 새롭게 유혹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진리를 보아야합니다.

 

【 왜 생명과를 먹지 않았을까요! 】

 생명나무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과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과 평화를 주는 그야말로 영원히 생명을 유지케하는 나무였습니다. 이런 존귀한 생명나무를 왜 아담과 하와가 따먹지 않았을까요? 이것은 아주 중요한 진리로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런 생명나무의 존귀성을 알았을까요? 몰랐습니다. 그것은 성경에도 생명나무의 열매가 보암직하거나 탐스럽거나 먹음직 하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생명나무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나 당시 아담과 하와는 이런 사실을 몰랐고 생명나무의 존귀성도 몰랐습니다. 그저 평범하였고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생명나무가 아니었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에덴 동산은 낙원입니다. 하나님 여호와로 처음 창조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성이나 생명이요 영생이요 자신들에게 평화와 영원한 기쁨과 소망과 사랑이 되시고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줄 알지 못했고 당시의 아담과 하와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절실히 필요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태어나서 선과 악을 겪어보고 체험해보지 아니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에덴동산은 낙원이므로 어떤 것을 보고 싶다거나 먹음직스럽다거나 탐스럽다거나 하는 것들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아름답고  오만가지 과실이 있는 여기가 천국이요 낙원인데 무엇이 필요하고 바라고 탐하는 것이 있었겠습니까! 이런 낙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성과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이라는 절실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가 천국이요 낙원으로 선이나 악을 체험하지 못한 가운데 생명과와 선악과의 두 양면성의 생명과 심판의 파멸의 엄청난 비밀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낙원의 행복과 즐거움과 기쁨으로 에덴 동산에 있는 만가지 과실로 만족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단순하게 이렇게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넘치는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이 영원토록 계속될 것으로 알았고 이보다 더한 행복이 없는 낙원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외의 다른 세계나 선이나 악이나 분별력이나 이 행복과 기쁨의 낙원의 삶이 어떻게 주어지고 왜 이 기쁨을 자기들이 누리고 왜 창조되었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될 존재인지 비밀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것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세계적인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왕자와 공주처럼 황제처럼 존경과 예우와 사랑과 대접만 받고 부러울 것 없이 모든 것을 받아 누리므로 가난과 고통도 모르고 절망이나 좌절이나 전쟁이나 멸시나 천대나 조롱이나 눈물도 모르고 자라온 온실 속의 화초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와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가난과 고통과 슬픔과 아픔과 죽음이나 질병이나 절망이란 것을 전혀 느껴보지 못하고 산다면 이는 절대로 정상적인 인격체나 참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모를 것입니다. 한쪽의 행복한 면만 체험하고 살았다면 이는 온전하고 완전한 인생을 살았던 자가 아닙니다. 그 반대의 개념으로 어떤 술주정뱅이의 아들, 딸로 태어나 부나 기쁨이나 즐거움과 평화와 참된 안식을 느껴보지 못하고 가난과 절망과 쓰라린 고통과 아픔과 눈물 속에 살았다면 이것 또한 정상적인 인생이 결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양면성의 한쪽 면을 알지 못하고 살았을 때 자신들이 존재하는데 있어 창조주에게 감사와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드리고 감격과 감동 속에 창조주를 경외하고 경배할 것인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이라면 고통도 환희도 기쁨과 슬픔도 소망과 절망도 전쟁과 평화도 온갖 양면의 선과 악을 다 겪어 보고 체험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비로소 참된 평화, 기쁨, 행복, 안식과 즐거움에 창조주에게 참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리며 하나님의 나라, 낙원을 사모하며 그것을 주신 창조주께 영원무궁토록 감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진실한 전인격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온전하고 완전하게 받으실 영광이요 찬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원에서 재벌의 아들, 딸처럼 황실에서의 왕자와 공주처럼 누리기만 하는 것은 완전하고 온전한 인격체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 개념의 다른 세계, 그래서 양면을 다 체험하고 알았을 때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서 지성과 감성과 의지로 자신의 존재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온전하고 완전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한쪽의 악을

체험하지 못한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로부터 받는 찬양과 감사와 존귀는 하나님께 온전하고 완전한 영광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통해서 반드시 악을 체험해야 비로소 이들이 드리는 감사와 찬양과 영광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하며 그 마음을 시원케 할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나무의 존귀성을 모르고 생명나무 속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므로 생명나무에 관심조차 없는 아담과 하와가 드리는 영광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영광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셨고 사단이 뱀에게 들어가 하와를 유혹하고 미혹하여 반드시 필연적으로 체험해야 할 악의 체험을 하나님께서 묵인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기쁨과 즐거움과 평화를 감격과 감사 속에서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찬양을 드려도 온전하고 완전하지 못하여 순종과 불순종의 하나님의 시험에 있어 반드시 겪고 넘어가야 할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무궁토록 찬양과 영광과 감사를 감격스럽게 드릴 천국의 영원한 백성, 이 천국인이 하나님의 목적이었으므로 반드시 거쳐야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선악을 체험하지 못하고 생명나무에 관심이 없었던 아담과 하와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악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서 뱀에게 들어간 사단마귀의 유혹을 물리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유혹을 받고 보니까 전에는 그렇게 안보였는데 선악과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던 것입니다. 바로 사단이 장악하는 악의 세계, 죄악이 관영하고 전쟁과 온역과 고통과 절망과 환난과 슬픔과 아픔의 십자가가 있는 세상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마귀, 악이 지배하는 고통스런 이 세상에서 환난과 전쟁과 죽음과 질병의 아픔과 슬픔 속에서 비로소 선이 무엇인 줄 알고 선의 나라, 하나님이 계시고 통치하시는 나라, 사랑의 하나님이시오 우리에게 행복과 기쁨과 생명과 즐거움과 평화와 안식을 영원히 주시므로 이를 위해 천국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새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나의 본체가 되고 내 주인이 되고 중심이 되고 영원한 신랑이며 생명 그 자체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삶의 목적과 목표가 되고 푯대가 되고 유일한 소망이 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로 이 땅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초월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와 영생을 누리기 위한 새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이요 다시 태어나는 두번의 출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로 똑같은 형상의 전인격적 품성의 온전하고 완전한 천국인들로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무궁토록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목적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가 완전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완전한 천국인이 아니기에 선악과를 먹고 죄악이 관영한 사단이 지배하는 고통과 환나과 사망과 질병과 전쟁과 슬픔과 악령의 궤계로부터 훈련의 기간이 필요했고 교육과 양육과 풀무 불의 단련과 연단의 과정과 예수 그리스도로 완전히 거듭난 승리의 천국인이 필요한 과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천국인의 훈련과 시험의 과정에 있는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성공과 출세와 영화와 행복을 소망삼아 전심을 기울이고 있는 주의 종이나 성도가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하고 완전한 천국인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거듭나기를 원하시는데 아담과 하와처럼 에덴에서 누리고자 하는 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체험했으므로 다시는 사단에게 미혹되거나 배도하거나 배교하고 반역하는 계명성의 루시퍼 천사나 아담과 하와처럼 온전하고 완전하지 못하여 또 반역하는 자가 천국에서 영원토록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아주 철저하게 심사하여 뽑으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7:21~23절까지 말씀을 왜 하셨는지 하나님의 비밀을 바르게 깨달아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7:21~23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

                   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

                   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

                   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

                   나가라 하리라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위대한 종이 되고 종교 지도자가 되고 귀신을 쫓아내고 선지자 되고 신학자 되고 기사, 이적, 표적, 권능을 행하고 은사와 내세의 능력이나 성령의 체험이나 말씀의 능력이나 성전을 지어 봉헌하고 헌신하고 충성하고 봉사하고 위대한 사역을 감당했어도 이것이 구원의 조건이나 공로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온전하고 완전한 천국인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전인격적 품성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와 일란성 쌍둥이처럼 모든 것이 똑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절대로 배도나 반역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와 출생과 자라나심과 전대도 없고 옷 두 벌 없이 이 땅에서 절대로 부하거나 영화, 성공 출세, 행복 누리지 않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기까지의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의 고통과 고난의 삶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므로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후사요 천국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후사라는 말은 원어에서 "야라쉬"라는 말과 "스페르마"인데 야라쉬는 '소유하다, 상속을 받다, 물려받다'의 뜻으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소유하고 천국을 상속 받을 자들인데 이들이 바로 '스페르마'의 '씨, 종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씨를 그대로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잉태와 태어남에서 삶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의 보좌에 가기까지 똑같이 동행하여 쌍둥이 같이 따라간 자라는 것입니다. 이 구원론 외에 다른 어떤 구원론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갖가지 구원론이 나돌고 있어 오죽하면 어떤 목사님이 한국 교회를 주도하는데 구원 인플레이션 현상이 일어나 구원론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왜 에덴동산에 두시고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와가 따먹기까지 천군천사로 막지 않고 묵인하셨느지 이유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죄악과 사단이 득실거리는 이 세상에서 악의 고통과 사망과 전쟁과 온역과 두려움과 슬픔과 환난과 절망 속에서 이 악을 충만히 체험하고 고난과 환난의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똑같이 거듭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가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하고 완전한 천국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여 오늘 이 시대에 우편 강도의 5분 즉석 구원설과 신앙고백만 해도 구원 얻느니, 주일만 지켜도 구원 얻느니, 성전 지어 봉헌하면 구원 얻느니, 이름 있는 종과 교회에 구원이 있고 세계의 유명세를 타고 있는 교회에 구원이 있고 이보다 한 술 더떠 이방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종교 다원주의, 혼합주의의 통합된 종교의 오늘 이 시대의 교회에 성도가 주인이 되고 중심이 되어 절대로 구원이 없습니다.

하와는 타락한 음녀교회의 상징입니다. 사단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보니까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하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에 타락하고 부패하는 모든 교회의 비밀이 다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에는 영적 선악과가 있는데 이것을 따먹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누구인가?

 

{ 선악과가 먹음직한 영적 의미 }

이는 아담과 하와가 먹는 것 때문에 사단의 유혹을 받아 실족했다는 것입니다.

 

마4:3~4 <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

                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여든 명하여 이 돌

                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

                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

                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느니라 >

 

왜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을 받았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먹는 문제에 실패한 신앙의 시험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담은 모형이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 먹는 문제의 시험에서 이겨 아담의 실패를 제 2의 아담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께서 회복하시려는 것으로 40일 금식하시고 가장 시급한 것이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의 양식을 해결하려 하지 않으시고 영혼의 양식의 해결이 우선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여 승리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후사가 되는 거듭난 성도는 이 세상에서 먹는 문제인 육신의 양식을 절대로 우선으로 여기지 않고 영혼의 양식을 제1순위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양식이 없어 금방 쓰러지고 죽을 지경이지만 먹는 것을 해결하고자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서까지 육신의 양식을 구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하와는 사단의 유혹을 받더니 영혼의 양식은 까마득히 잃어버린 가운데 당장 먹음직한 육신의 양식을 우선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육신의 양식 즉 이 세상에서 먹을 것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까지 육신의 양식에 우선을 두는 잘못된 신앙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먹을 양식을 위하여 주일을 범하고 예배를 범하고 기도와 헌신과 봉사와 하나님의 일을 거스리면서 육신의 양식을 위해 믿음을 져버리고 성령을 거스리고 훼방하고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지금 그리스도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취미생활, 직업, 직장, 사업 너무나 많습니다. 도무지 성도로서 해서는 안 될 사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주일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육신의 양식 때문입니다. 이런 성도는 지금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있는 상태와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영 분별력과 말씀과 선과 악의 분별력이 없으므로 육신의 양식을 우선으로 목적을 삼기 때문에 영혼의 양식이 제1의 목적이요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영의 상태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도무지 그리스도인들이 해서는 안 될 사업이나 직장이나 장사나 취미생활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선악과를 자신이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별로 없습니다. 특히 지금 이 시대에는 성도들의 육신의 양식을 얻기 위한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어 육신의 양식 때문에 얼마나 고통을 받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용할 양식 외에 더 욕심부리지 말고 내일 먹을 것을 내일 구하고 이것 때문에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지 말라, 사람이 영의 존재이기에 영의 양식이 중요하지 육의 양식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해결해 주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 내린 만나가 딱 하루 분의 일용할 양식이었고 이틀, 삼일 분의 만나를 욕심내어 준비해 두었더니 바로 썩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먹는 양식, 그것도 영의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의 양식이 아니라 육신의 양식을 탐하고 여기에 마음을 두고 있는 자가 바로 선악과를 먹고 범죄한 아담과 하와의 옛 사람의 죄인의 모습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바로 이들이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리고 배반했다는 것입니다.

 

{ 선악과가 보암직했다는 영적 의미 }

이는 아담과 하와가 육신의 보이는 대로 만족했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영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면 이것으로 올 멸망과 심판의 저주와 파멸을 보았겠으나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미혹을 받으니 선악과가 보기에 좋았더라는 것입니다.  

 

마4:5~6 <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

                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

                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

                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

 

이것의 영적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왜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전 꼭대기에 올려 놓고 뛰어 내리라고 할까요? 천군 천사가 지켜 주시니까 발이 상하지 않도록 받드러 보호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심오한 진리가 있으나 이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주의 종들이나 성도가 이 글 속에 넘어갑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였습니다.

피조물이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 자체가 무서운 범죄입니다. 그런데 지금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 보고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돌에 발이 상하지 않게 보호하여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전 꼭대기는 신령한 곳입니다. 여기에서 땅에 뛰어내리라는 것은 타락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신령한 믿음을 가지고 타락한 땅의 것을 구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땅의 타락된 것을 구하며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주의 종들이나 성도들이 범하고 있는 엄청난 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의 신령한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이 말씀을 이용하여 땅의 것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마7:7~11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

                 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

                 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

                 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

                 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

                 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

                 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

                 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6장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들이 육의 것을 구하되 먼저 구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육의 것을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중의 새도 농사짓지 않아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직조도 아니해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름답게 입히시었고 솔로몬의 영광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입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찮은 참새나 들의 백합화나 오늘 있다 내일 아궁이에 들어가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먹이시고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러니까 땅의 것을 전심으로 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마7:7~11절에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것은 먼저 천국인이 되기 위한 거듭남과 구원을 위한 신령한 것들을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것인데 이 시대의 종이나 성도들이 다 이 땅의 것을 구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아니하고 육신에 머물러 있는 신자들이 자기의 사업과 직장과 성공과 출세와 권세와 사업의 창대케 됨과 자식의 출세와 세상의 영화와 부귀와 행복을 구하는데 온 전심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봐라 하나님께서 구하라 하지 않았는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다 주신다 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 해석의 오류와 착각 속에 빠져 얼마나 잘못되어 육신의 일에 이용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믿음이 없고 구원 얻지 못한 천국인이 아닌 자들이 이 땅의 것을 구하여 모든 것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것으로 더 타락하고 부패하고 영영히 거듭나지 아니할 백성으로 전락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과연 이것을 주시겠는가!

이렇게 하나님의 영적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다 이땅의 행복과 성공과 출세와 권세와 영화를 위하여 이 땅에서 더 안주하고 뿌리를 내리고 타락하고 부패할 것이 뻔한데 이런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고 시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축복론, 기복 신앙이 신비주의의 병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과 출세와 자식의 성공과 영화를 위해 믿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샤머니즘 신앙에 빠져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구원과 거듭남과 천국인이 되기 위해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했더니 전부 이 땅의 것을 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더 부패하고 타락할 것을 엉뚱하게도 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안 되면 우상을 섬기고 간음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불평과 원망만을 터뜨리다가 이스라엘의 대다수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 전서 10장에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었는데 이스라엘은 성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은 성도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이같이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고 우상을 섬기고 간음하다 다수가 죽었는데 신약의 성도도 똑같은 모습이라는 말입니다.

 

고전10:5~12 <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

                      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

                      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

                      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

                      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

                      이 너희는 우상숭배 하는 자가 되지 말

                      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

                      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

                      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

                      에 이만 삼천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

                      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

                      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

                      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

                      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

                      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

                      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

                      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되

                      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

                      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사도바울은 이스라엘이 애굽 세상에서 나와 홍해건너는 것을 물세례로, 광야를 교회로, 요단강을 성령세례로, 가나안을 천국으로 묘사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거의 죽습니다. 왜 구원의 수가 적은지에 대해 이스라엘이 저지른 범죄를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금 이 시대 성도들이 짓고 있는 죄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거울 안과 밖의 모습이 똑같음을 왜 사도바울이 상징적으로 묘사했겠습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임에도 땅의 것을 구하다가 멸망을 받은 족속입니다. 이것은 오늘 이 시대의 교회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칭 선민이니, 의인이니 하나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는 천국백성이 하나님의 목적이었기에 천국백성으로서 훈련과 양육과 교육과 연단의 과정에서 믿음을 구하고 신령한 것을 찾고 하나님 나라의 문을 두드리라고 했더니 모두 이 땅에서 잘 살고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성공하고 출세와 권세와 영화와 행복만을 달라고 구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멸망 받을 말세의 교회들에 대한 경고라고 사도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거듭나지 아니한 성도가 허다합니다. 멸망에 처할 무리가 너무나 많음에도 자신의 이런 모습들을 보지 못하는 자가 심히도 적은 것입니다. 세상의 보이는 육의 것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이 땅의 것으로 바꾸어 구하고 있는 이 시대의 거듭나지 아니한 자들에게 대한 경고입니다.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 선악과가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웠다는 영적 의미 }

하와가 사단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보았을 때 지혜롭께 할만큼 탐스러웠다는 것은 이 땅의 탐심과 정욕과 탐욕에 지혜가 밝아졌다는 것입니다.

 

마4:8~10 <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

                 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

                 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

                 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희 하

                 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셨느

                 니라 >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의 유혹을 받아 타락하고 부패한 원인이 이 천하만국과 권세와 성공과 영화와 행복이 하나님이 창조하여 주시고 만물이 주께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몰랐다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을 체험하기 전과 선과 악을 체험한 후의 신의 개념이 확실히 달랐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을 온전하고 완전하게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유혹을 받았고 세상의 권세와 영화와 행복과 영광을 탐하고 정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으로서 성부되신 하나님을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알았기에 마귀의 유혹인 세상 영화와 영광과 권세를 다 주겠다고 자신에게 경배하라고 했지만 이 모든 것이 오직 성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을 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유혹에 넘어갈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알되 완전하고 온전하게 알지 못했다는 것으로 선과 악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 천국인으로서 훈련과 연단과 교육과 양육의 과정을 밟기 전의 육의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육의 모습을 가지고는 절대로 천국백성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첫번째 출생인 아담과 하와의 육의 모습은 100% 사단의 유혹과 마귀의 미혹을 받아 반드시 타락하고 부패와 죽음과 멸망과 심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는 창조가 아니라 천국인의 창조에 있어 반드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육의 과정을 거치고 두 번의 출생이 있는데 이때 아담과 하와의 육의 모습은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으로 마귀의 유혹을 받아 부패하고 타락할 수밖에 없고 이런 선과 악의 극렬한 체험을 거친 후에야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서 제2의 거듭남의 출생의 과정을 하나님께서 이미 만세전부터 예정하시고 계획하신 섭리였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래야 천국인이 될 수 있었기에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선과 악의 코스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의 창조는 육의 모형이요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영의 실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서 거듭나야 비로소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성령님을 알고 내세의 천국과 지옥을 알되 지식과 형식과 외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전인격적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 거듭남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부부가 되어 혼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또 신앙의 장성함을 의미하고 세마포 옷으로 단장된 신부라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내로 삼으시듯 신앙이 장성한 자가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거듭남이 새 생명의 두 번 출생으로 영적 초보자요 갓난 아기로 젖을 먹고 자라는 과정이 아니라 단단한 식물을 먹고 지각을 사용하는 영의 통찰력을 가진 그래서 선과 악을 분변하는 자가 장성한 자요 이가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 혼인할 수 있는 자로 거듭난 자라는 것입니다.

 

《 예수를 모르면 진리를 모른다. 》

한국 교회의 치명적인 것이 거듭남이라는 교리를 잘못 인식하고 거듭남의 신앙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르게 깨우쳐 주시는 말씀이 히5:11~14절과 히6:1~6절입니다.

 

히5:11~14 <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

                   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

                   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

                   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

                   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나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

                   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

                   씀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

                   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

                   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이 말씀을 요약해서 해석하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 = 멜기세덱은 제사장으로 아브라함을 만나 주었고 또 아브라함의 장막에 나타나 언약의 자식인 이삭을 잉태시켜 줍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풀어 주었더니 못 알아 듣는다는 것입니다. 이 영적해석을 알아 듣지 못하여 이런 설교나 말씀의 증거가 재미없다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사라와 아브라함, 라헬과 야곱, 한나와 엘가나는 남편이 있어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입니다. 그리고 오랜 고통의 세월 속에서 아이를 갖는데 사라와 아브라함에게 두 천사를 대동하고 하나님이 사람의 형상을 입고 창18장에 나타나신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언약의 자식 이삭을 잉태케 하는 사건인데 이렇게 언약의 자식을 낳는 어떤 계기가 있습니다. 라헬도 야곱과의 사이에서 아이가 없어 고통당하다가 맥추절에 합환채를 구해온 언니 레아의 아들 르우벤으로부터 남편을 주고 합환채를 사서 먹고 요셉을 낳았습니다. 한나는 성전에서 밤낮없이 아이 없는 것을 애통하고 탄식하다가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이들 세 여인의 공통점은 자기 남편이 있어도 아이를 갖지 못했으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이 오셔서 아이가 잉태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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